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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내셔널] 베트남 선생님께 엄마 나라 배워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울산 울주군 언양초등학교 2학년 4반 교실. 베트남인 교사 남티 응옥 흐엉(40)과 응우이엔 티 탄투(25)가 베트남 수도를 묻자 여기저기서 “하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혼해 울주군에 사는 베트남인 도안 티 장(37)이 통역했다. TV 화면에 베트남의 농(삿갓)·아오자이(전통 의상)가 나타나자 학생들은 “본 적 있다”며 반가워했다.

언양초 흐엉·탄투 교사 수업 현장 #교육부 교류사업에 뽑혀 3월 입국 #3개월간 베트남 역사·문화 가르쳐 #다문화학생들 “엄마 고향” 친근감 #코딩교육 등 배워 모국 전파 꿈꿔

흐엉은 베트남 호치민 화느중학교에서 생물을, 탄투는 하노이 으웬지프엉 중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날은 베트남 음식·지리·국기·명절·풍습 등 문화를 가르쳤다. 20여 명의 초등생은 눈을 반짝이며 그 어느 때보다 수업에 적극적이었다.

베트남인 교사 흐엉(오른쪽)과 통역사가 베트남 전통 삿갓인 농을 소개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베트남인 교사 흐엉(오른쪽)과 통역사가 베트남 전통 삿갓인 농을 소개하고 있다. [최은경 기자]

두 교사는 교육부의 ‘다문화가정 대상 국가와의 교육 교류 사업’으로 지난 3월 27일 한국에 왔다. 언양초교는 다문화가정 학생이 전교생의 6%인 40여 명이나 돼 이 사업을 신청해 교류 대상학교가 됐다.

아오자이를 디자인하는 2교시에는 학생들이 베트남 노래를 들으며 흰 종이에 그려진 아오자이 모형에 색칠했다. 두 교사는 말이 통하지 않지만 오케이(OK)·굿(Good) 같은 간단한 영어와 몸짓을 하며 학생을 도왔다.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박규민 학생은 “아오자이를 입은 엄마 모습을 본 적 없지만 색칠을 해보니 정말 예쁘다. 자주 입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주아 학생은 “베트남 수업 뒤 가족과 베트남에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자 흐엉·탄투 교사에게 학생들은 “신 짜오”(베트남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라고 인사했다. 두 교사는 오는 6월 22일까지 언양초교에서 베트남 전통 놀이·생활 회화 등을 가르친다. 지난달 25일 경주 소풍에 동행하는 등 모든 학교행사에도 참여한다.

탄투 교사(왼쪽)와 흐엉. [사진 언양초교]

탄투 교사(왼쪽)와 흐엉. [사진 언양초교]

흐엉·탄투처럼 18명의 베트남인 교사가 전국 9개 초등교에서 이런 수업을 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학생 등에게 자존감과 다문화 감수성을 키워주고 국내 교사에게 글로벌 역량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베트남 교사에게는 한국에 우호적인 인식을 갖게 하려는 뜻도 있다.

교류사업은 나름의 성과가 있다고 한다. 언양초 배지선 교사는 “두 교사가 지나가면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우리 엄마 고향도 베트남’이라고 자랑할 정도로 베트남과 친숙해졌다”고 말했다. 탄투는 “한국의 방과후 수업과 코딩교육 등 좋은 교육법을 배워 베트남에서 응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흐엉은 “한국과 베트남은 친구”라며 “한국 학생에게 베트남 사람들이 밝고 상냥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베트남 간 ‘민간 외교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두 교사는 “한국 학생들은 창의력과 독립성이 뛰어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 같다”고 추켜세웠다. 언양초교의 캐릭터인 키우미·나누미(꿈을 키우고 사랑을 나눈다는 뜻)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조구순 언양초 교장은 “전국에 다문화가정 학생이 10만 명 이상 있어 한국과 가까운 아시아 국가와도 더 많이 문화를 공유하고 서로 배워야 한다”며 “이번 수업으로 학생들이 낯선 문화를 포용하는 배려심이 커진 것 같다”고 소개했다. 조 교장은 2016~17년 베트남 탄번초교·레득터초교를 방문해 교류한 바 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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