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북 대결 종식한 평창올림픽, 평화가 가장 큰 유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1면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조재기 이사장은 지금도 공단이 주는 메달리스트 연금을 받는다. [변선구 기자]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조재기 이사장은 지금도 공단이 주는 메달리스트 연금을 받는다. [변선구 기자]

서울올림픽기념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공단)은 한국 스포츠의 젖줄이다. 국가대표의 훈련과 출전 비용, 국제 대회 메달리스트 포상금 등 엘리트 스포츠 예산이 공단이 조성한 기금에서 나온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경기장 건설 및 대회 운영 비용 상당 부분도 공단의 기금에서 나왔다. 생활체육, 학교체육 관련 예산도 마찬가지다. 공단은 해마다 약 1조5000억원(2017년 기준)의 기금을 조성한다.

조재기 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인터뷰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중 첫 수장 #1976년 몬트리올 유도 무제한급 동 #88 조직위와 체육회 사무총장 거쳐 #“행정도 훈련처럼 평소에 몸에 배야”

서울올림픽이 끝난 이듬해인 1989년 만들어진 공단은 지난달 20일 창립 29주년을 맞았다. 내년이면 30주년이다. 1일로 취임 100일째가 된 조재기 공단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 첫마디로 “공단과 직원들이 메인이고 나는 양념이다. 메인 얘기를 많이 써달라”고 당부했다.

몬트리올 올림픽 유도 무제한급 시상식 당시의 조 이사장(오른쪽). [국민체육진흥공단]

몬트리올 올림픽 유도 무제한급 시상식 당시의 조 이사장(오른쪽). [국민체육진흥공단]

조 이사장의 키는 1m90㎝, 몸무게는 100㎏다. 악수할 때부터 상대를 압도했다. 고희에 가까운 나이(68세)인데도 체격이 탄탄하다. 경남 하동 출신인 조 이사장은 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 출신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남자 무제한급에서 동메달을 땄다. 만석꾼 아버지의 반대로 고교 졸업 때까지는 운동 근처에도 갈 수 없었던 그는, 1968년 동아대에 입학한 뒤 정학균 감독을 만나 유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4년 만인 72년 한국유도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75년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유도 유학을 다녀온 그는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했다. 몬트리올 올림픽은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해방 이후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 이사장은 당시 유도 라이트헤비급(93㎏ 이하)에 출전, 4위에 그쳐 메달을 따지 못했다.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던 그는 유도 무제한급에 출전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양정모의 레슬링 경기가 열렸다. 한국 선수단 모두가 양정모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다. 애원 반 협박 반으로 출전 허락을 얻은 그는 패자결승전에서 이겨 동메달을 땄다. 그런데 조 이사장은 “올림픽에서 값진 메달을 따냈는데도 당시 사진이 한장도 없다” 고 했다. 취재진과 선수단이 모두 레슬링장으로 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난 뒤 그는 당시 금메달리스트인 일본의 우에무라 하루키에게서 시상식 사진 복사본을 한장 얻었다. 그는 “내 이름이 재기라 그런지 한 번에 안 되도 두 번째는 꼭 된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부친 뜻에 따라 농과대(잠사학)를 다녔지만, 올림픽 메달을 계기로 전공을 체육학으로 바꿨다. 이후 학위를 딴 뒤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현장과 이론에 두루 밝다는 이유로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일하게 됐다. 2002년에는 부산 아시안게임조직위 사무차장을 맡았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조정위원으로 활약했다. 또 대한체육회 사무총장도 지냈다.

공단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그에게 체육계 당면 현안에 관해 물었다. 서울올림픽 유산 관리를 위해 설립된 공단이다 보니 평창올림픽 유산, 특히 경기장 사후관리도 공단의 숙제다. 그는 “쿠베르탱이 근대 올림픽을 재건하면서 화합과 평화를 앞세웠다. 서울올림픽이 갈라졌던 동서를 이어준 화합의 대회였다면, 평창올림픽은 남북의 대결을 종식한 평화의 대회가 됐다. 평창의 유산은 소중하다. 다만 평창은 중앙·지방정부 간의 이해가 얽혀있어 조심스럽다”고 답했다.

조 이사장은 교수 시절 영남권 올림픽 유치에 앞장섰다.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또 한 번 올림픽 유치 여론이 꿈틀거린다. 지역이 아닌 중앙으로 올라온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그는 “올림픽을 하려면 주최 지역 인구가 1000만은 돼야 가능한데, 부산·대구·울산·창원을 묶으면 그 규모가 된다. 영남권 올림픽이 가능한 이유다. 수도권에 치중된 국토 개발도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공기업에는 빼놓을 수 없는 연중행사가 경영평가다. 좋은 평가를 받을 특별한 비책이 있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운동하는 사람들은 동작 하나가 몸에 밸 때까지 수백, 수천 번 훈련합니다. 그래야 실전에서 무의식적으로 그 동작이 나옵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잘하고 그때그때 잘 정리하면 평가를 위해 별도 조직을 만들고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