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양말 신고 문맹 퇴치 힘쓴 반려자 떠나 보낸 아버지 부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세인트 마틴 교회에서 지난 21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국민 할머니’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
독특한 양말 취향으로 여러 번 회자됐던 아버지 부시(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는 73년 반려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이날 평소보다 더 신경 써 양말을 골랐다.
다운증후군 앓는 20대 청년 양말 사업가에 부탁 #"잔잔하고 아름답게 추모했다" #자칭 '양말맨' 부시, 독특한 양말 취향으로 수차례 화제
회색 계열의 어두운 수트 바지 끝단 아래로 드러난 그의 양말에는 빨강, 파랑, 노랑 등 알록달록한 책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미 CBS 뉴스 등에 따르면 이 양말은 22살의 존 크로닌이라는 청년 양말 사업가가 선물한 것이다. 부시는 그에게 직접 연락해 장례식에 신고 갈 양말을 부탁했다고 한다.
존이 고심해 책을 테마로 한 양말 몇 켤레를 애도 편지와 함께 보냈고, 부시는 생전 문맹 퇴치에 힘썼던 아내를 기린다는 의미로 이 양말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CBS 뉴스는 그가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in a subtle, yet beautiful way) 바버라 부시에 경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재단을 설립해 기금을 모으는 등 다양한 자선 활동을 벌여왔다.
부시는 평소 존을 ‘친구’라고 표현할 만큼 둘 사이는 각별하다. 지난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부시를 문병해 캐릭터 양말을 선물했는데 이 사연을 전해 들은 존은 먼저 부시에게 그가 파는 양말 꾸러미 한 박스를 보냈다고 한다.
지난달 세계 다운증후군의 날에도 부시는 존이 선물한 ‘슈퍼 히어로’ 양말을 신고 인증샷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존은 장애를 딛고 백만장자가 된 청년 사업가로도 유명하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그에게 양말은 개성을 가장 잘 뽐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16년 아버지 마크 크로닌과 존스 크레이지 삭스(John’s Crazy Socks)라는 양말 회사를 차리게 된 배경이다.
그는 1900가지 이상의 화려하고 재미있는 문양의 양말을 납품받아 판다. 직접 양말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수익의 5%는 스페셜 올림픽에 기부하고 33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가량인 15명을 장애를 가진 직원들로 채우는 등 사회 공헌에도 열심이다.
부시가 신은 양말은 실제 존스 크레이지 삭스에서 600켤레 이상 팔렸을 정도로 인기를 끈 양말이다. 존은 이 수익금 전액을 바버라 부시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CBS 뉴스에 밝혔다.
부시의 대단한 양말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스스로를 ‘양말 맨(sock man)’이라고 부를 정도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시는 “예쁜 양말을 좋아한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생전 대중 앞에서 그가 “‘괴상하고 특이한 양말’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신은 양말은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2013년 4월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기념관 헌정식에선 그의 밝은 분홍색 양말이 화제였다. 손녀 제나 부시 헤이거는 트위터에 그 양말을 클로즈업해 올리면서 “내가 아는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성”이라고 적었다.
미식축구 팀 휴스턴 텍슨스의 치어리더 단과 만날 때는 성조기가 그려진 양말이 눈길을 끌었다. 89번째 생일에 대변인실을 통해 공개된 사진에서 그는 슈퍼맨 로고가 찍힌 양말을 신은 채 골프장 카트를 타고 있었다.
당시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색동 양말을 신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고,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 스티븐 해들리 전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등도 화려한 양말을 맞춰 신고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한편 바버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 다음 날인 23일 혈액 감염으로 입원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 온 부시는 현재 상태가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겼지만, 한동안 병원에 더 머무를 예정이다.
부시 일가 대변인 짐 맥그래스는 2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부시 전 대통령이 일정을 다시 시작하기를 고대한다”면서 “그는 다음 달로 예정된 (미국 북동부의)메인 주 여행을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