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표 토대로 보도하라” 방심위 지침 월권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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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심의기관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27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보도 유의사항을 제시하며 "오보 특별 모니터링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해 월권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사에 보도 유의사항 제시 #“정상회담 보도 실시간 모니터링할 것” #사후 심의기관이 사전 규제 논란 #언론개혁연대 “부당한 관여 중단을” #학계 “군사정부 때 보도지침 같아”

방심위는 26일 '남북정상회담 취재보도 유의사항'을 발표하며 "방송심의규정 위반 여부에 대한 특별 모니터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방송사별로 특집방송체제에 돌입하는 등 남북 정상회담 관련 취재 열기가 가열되고 있다"며 "최근 '드루킹 사건' 보도 과정에서 연이어 발생한 오보를 감안할 때 남북정상회담 역시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방심위는 특히 '방송은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다뤄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 방송심의규정 제14조를 근거로 "국가기관의 공식발표를 토대로 보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만약 방송사가 직접 취재해 보도하는 경우 확인되지 않은 취재원의 발언 또는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선 안 된다"며 "이를 근거로 추측보도를 해선 안 되며 하나의 출처에만 의존하는 태도 역시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4조는 방심위의 심의 방법에 대해 "방송·유통된 '후' 심의·의결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날 방심위가 사전에 유의사항을 제시하며 "특별 모니터링을 실시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사전 검열 및 규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국가기관의 공식 발표를 토대로 보도하라는 유의사항에 대해서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쓰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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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날 즉각 성명을 내고 "남북정상회담 취재에 관한 부당한 관여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 시민단체는 "방심위는 보도 결과를 사후에 심의하는 기관일 뿐 보도의 사전 과정에 관여할 아무런 권한이 없다"며 "방심위의 가이드라인은 정부의 공식발표에 근거하지 않은 보도에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심의하겠다는 압박성 발언으로 들리기에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방심위가 오보 사례로 제시한 '드루킹 사건'에 대해서도 "특정 사안의 보도에 대해 '연이어 발생한 오보 논란' 운운하며 낙인찍기를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며 "드루킹 보도 중 오보가 많으니 주의하란 얘기가 하고 싶은 것이냐"고 비판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말을 돌려서 했을 뿐 '정부에서 발표하는 일부 내용만 받아쓰라'는 공갈·협박 수준의 언론 보도 지침"이라며 "군사정부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반민주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현재 방심위원은 총 9명으로 이 중 6명은 여당 측 인사로 분류된다. 방송사는 방심위 규제를 받을 경우 3~5년마다 있는 방송사 재허가·승인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논란이 이어지자 방심위는 "오보 발생 우려가 높은 취재·보도 행위에 대해 예시를 통해 전달한 것"이라며 "방송사가 참고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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