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투리 잡자면 안 잡힐 기업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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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부정한 부의 축적과 세습 과정을 단죄하겠다고 선언하자 재계 관계자들은 사건의 여파가 도대체 어디까지 갈지 당황하는 표정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참여연대가 '38개 재벌 총수 일가의 주식 거래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것과 맞물려 울림은 더 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검찰과 시민단체가 장단을 맞춰가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지난 주말 노무현 대통령과 경제 5단체장 부부가 만나 관계 개선을 꾀하면서 따뜻하던 분위기는 다시 차갑게 식어버린 양상이다.

기업들은 상황이 미묘한 만큼 극도로 말을 아꼈다.

참여연대의 발표에 대해서도 일부 기업인은 "이미 알려진 내용을 재탕 삼탕식으로 거론하는 진의가 무엇이냐"고 불만을 나타냈지만 대다수는 '재판에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언급을 피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부정한 부의 축적과 세습'을 바로잡겠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옳은 이야기지만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한국적 기업 상황에서 부의 형성 과정에 대해 꼬투리를 잡자면 안 잡힐 기업이 없다는 '현실론'이다.

언제까지나 재계가 과거의 덫에 걸려 헤매야 하는가 하는 한탄도 들린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강조해 왔는데, 번번이 과거의 일로 한꺼번에 기업 이미지가 추락하곤 한다"고 말했다.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반성해야 한다는 원칙론도 나오고 있지만 검찰이 환율 하락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기업 현실을 외면한 채 전선을 넓히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더 큰 상황이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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