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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2주년] 아랍권 '낮은 포복'…목청 커진 反美·反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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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이슬람세계는 아직도 9.11의 후폭풍에 따른 굴욕과 혼란을 겪고 있다. 테러의 악몽 직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선언한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대외정책이 가장 극명히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중동지역이다.

미국의 군사 대응의 대상이 된 곳도 다름아닌 이슬람세계다.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이슬람세계는 사분오열(四分五裂)된 상태로 '자세 낮추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의 결정타를 맞고 정권이 붕괴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9.11 후폭풍에 희생된 나라의 대명사다. 이 두 나라는 알카에다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의혹 외에도 9.11 테러를 비난하는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유일한 이슬람 국가였다.

이라크는 이슬람세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속적' 독재국가였고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은 가장 엄격한 이슬람 원리주의를 적용했었다. 따라서 이 두 국가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응징은 이슬람세계의 성격이 다른 두 '문제아'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이 두 나라를 제외한 모든 이슬람 국가들은 9.11 테러 이후 바짝 엎드렸다. 특히 강경하던 리비아와 시리아는 미국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온순한 양'이 됐다.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최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을 받고 있는 이란의 이슬람 정권은 '제2의 이라크'가 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9.11 테러에 가장 많은 자국인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은 '테러지원 국가'로 지정될까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다.

한편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나 군사작전에 협조하면서 중동의 새로운 '친미정권'들도 등장했다. 기존의 터키.이집트.사우디 등의 역할이 이제 걸프해 연안의 작은 왕국들인 카타르.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소왕국들은 미국의 중동 내 군사.정치.경제적 교두보 역할을 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반면 중동 내에서는 '왕따'가 돼 간다.

이슬람세계, 특히 아랍권의 분열은 아랍연맹 회의장 분위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9.11 테러,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거치면서 카이로에 본부를 둔 아랍연맹은 '설전과 욕설'의 장이 됐다.

이슬람 종교에서 가장 치욕적인 욕설인 '돼지'라는 말도 등장했다. 이 같은 욕설을 자주 듣는 걸프의 산유국 대표들은 회의 도중 자리를 떠나버리곤 한다.

국가 간 분열과 더불어 대중은 들끓고 있다. 지난 2년간 두차례의 전쟁을 목격한 이슬람세계의 대중은 거센 반미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위정자들이 무기력하게 엎드린 틈을 이슬람주의자들이 파고들고 있다.

여기에 1960년대 아랍민족주의를 주창하던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의 사진들이 집회에 등장하고 있다. 이슬람세계 정권들이 '굴욕적으로' 침묵하고 무기력한 반면 지역의 대중들은 '개인적인 투쟁'이라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최근 이집트의 주간 알아흐람 위클리가 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3%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이 더 많은 테러를 야기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고 답했다. 실제로 2001년 9월 이래 이슬람주의자들이 행한 자폭테러는 급격히 늘어났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사진=바그다드 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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