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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대북 확성기 방송 이틀 중단된 민통선 가보니…‘조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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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중부전선에 위치한 대북 확성기 모습. [중앙포토]

경기도 중부전선에 위치한 대북 확성기 모습. [중앙포토]

24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연천군 중면 중부전선 민간인 출입통제선 내 임진강 평화습지원. 휴관 일을 맞아 문을 닫은 태풍전망대로 올라가는 길목이다. 이곳과 군사분계선 간 거리는 1㎞가량이다.
기자가 방문한 이곳은 그야말로 조용했다. 평소 남북한의 대북, 대남 방송이 온종일 이뤄지던 곳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기계적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와 새소리, 임진강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만 들려왔다. 이광길(64) 임진강 평화습지원 관리소장은 “어제 오전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단되더니 오후부터는 북한이 온종일 시끄럽게 틀어대던 대남 방송도 멈췄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밤이면 마을 방송 소리보다 시끄럽게 북한 체제 선전 등의 내용을 남쪽으로 틀던 북한 확성기 방송이 끊겨 오랜만에 조용한 밤을 보냈다”고 말했다.

24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에서 대남ㆍ대북 방송 실태 현장조사에 나선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가 소음측정기로 소음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24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 중면 민통선 내에서 대남ㆍ대북 방송 실태 현장조사에 나선 이석우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가 소음측정기로 소음 정도를 측정하고 있다. 전익진 기자

이날 대남·대북 방송 실태 현장조사에 나선 이석우(59) 연천지역사랑실천연대 대표는 “소음측정기로 재보니 소음도가 확성기 방송이 나오던 때의 절반 정도인 30∼50㏈(데시벨)로 나타났다”며 "민통선 지역은 완전히 고요함을 되찾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측이 대북 방송을 중단함과 동시에 북한 측도 대남 방송을 중단한 것을 볼 때 이제야 접경지역에 평화가 정착될 조짐을 보이는 것 같아 환영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연천ㆍ파주 민통선 소음 없어 #어제 오전부터 대북 방송 중단돼 #주민들 “모처럼 조용한 밤 보내 좋아” #북한 측도 어제 낮부터 대남 방송 중단 #북한이 즉각 화답하면서 평화무드 #주민들 “남북 정상회담 성공도 기대”

그동안 대남·대북 방송으로 인한 소음에 무방비로 노출돼 고통을 겪었던 민통선 내 횡산리 마을 주민들도 모처럼 찾아온 대남·대북 방송 동시 중단을 반겼다. 이정열(65) 부녀회장은 “그동안 대남 방송보다 대북 방송 소리가 더 크게 들려 힘들었는데, 어젯밤에는 아무런 소음이 들리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경기도 중부전선에 위치한 대북 확성기 모습. [중앙포토]

경기도 중부전선에 위치한 대북 확성기 모습. [중앙포토]

이런 상황은 서쪽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민통선 내 해마루촌의 조봉연(63) 농촌체험마을추진위원장은“대북 방송이 어제 오전부터 중단되고 오후엔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리도 끊겼다”며 “그동안 집 바깥으로 나서면 온종일 윙윙거리는 대남 방송 소리가 들려 늘 힘들었는데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이번 남북한 방송 중단을 계기로 며칠 앞으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이 잘 마무리되고, 남북 간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민통선 내 전망대 위치도. [중앙포토]

민통선 내 전망대 위치도. [중앙포토]

앞서 군은 지난 23일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대북 확성기 40여 대를 껐다. 남북 정상회담(27일)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이뤄진 조치다. 1963년 5월 1일 서해 부근 휴전선 일대에서 처음 시작된 대북 확성기 방송은 남북관계가 호전됐을 때는 중단됐다가 악화했을 때는 다시 켜지기를 55년간 반복해 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정부가 전격 중단한 것은 북한의 ‘핵 동결’ 조치에 대한 일종의 화답이다. 이에 북한 측도 대남 방송을 중단하며 호응하고 있다.

연천·파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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