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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 남북 정상회담 특집] '화해모드' 김정은, '강경파' 군부 갈등 없나

중앙일보

입력

김정은, 무자비한 숙청·강등으로 군부 힘 빼기, 방중(訪中) 때도 수행단서 배제…정권에 지분 가진 빨치산 출신 원로들, 군부 홀대에 속으론 ‘반감’ 소문 돌아

북한군 화력훈련에 앞서 검은색 벤츠를 타고 부대를 사열 중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 사진:조선중앙TV

북한군 화력훈련에 앞서 검은색 벤츠를 타고 부대를 사열 중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 사진:조선중앙TV

지난 4월 11일 오전 평양 중심가인 중구역 서문동에 자리한 만수대의사당. 수십 대의 고급 벤츠 승용차와 버스가 속속 도착하더니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녀 600여 명이 줄지어 내렸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집권 이후 아홉 번째인 최고인민회의 13기 6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과 북한 전역에서 모여든 대의원들이었다.

'핵심 엘리트' 대규모 탈북 결행설도

이날 논의에서는 지난해 예산 결산과 올 예산 심의·의결,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문제와 함께 조직 문제가 다뤄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회의 때와 다름없는 의제가 논의된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인사 문제가 북한 매체의 보도로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대북 관측통들은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북한 권력 내부에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된 때문이다.

무엇보다 황병서 전 군 총정치국장의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해임이 눈길을 끌었다. 황병서는 한때 북한 군부의 1인자로 꼽히며 승승장구했다.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김정은이 후계자로 자리 잡아가면서 권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김정일 집권 말년인 2010년 중장(북한군은 별둘) 계급이던 그는 4년 만에 세 단계를 뛰어올라 차수(대장위 계급)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는 2014년 5월 군 총정치국장을 거머쥐었다. 새로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2004년 사망)가 자기 소생인 김정은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만드는 데 사활을 걸고 있을 때 황병서가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 때문에 김정은이 황병서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챙긴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황병서는 지난해 말부터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노동당에 ‘불순한 태도’를 보였다는 이유로 검열을 받고, 측근이자 총정치국 제1부국장인 김원홍 대장까지 동반 철직(해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 군부에 대한 당적(黨的) 통제를 담당해온 총정치국의 수뇌부가 직격탄을 맞고 몰락한 건 1997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숙청 피바람을 일으킨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국가정보원도 이런 심상치 않은 정황을 파악해 지난해 11월20일 열린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김정은 특별지시에 따라 칼잡이로 나선 건 최용해 당 부위원장이다. 최용해는 자신이 장악한 노동당 조직지도부를 동원했다. 집중 검열을 통해 황병서를 비롯한 총 정치국의 간부들이 전횡을 일삼고, 노동당의 지도를 무시하거나 허위보고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이런 비위사실은 김정은에게 직보됐고 즉각 황병서·김원홍 등에 대한 처벌 조치가 단행됐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이 파악한 내용이다. 황병서와 김원홍의 경우 처형 같은 극단적인 사태는 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기가 쉽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총정치국장의 위상 격하

지난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6차 회의에서 실각이 확인된 황병서 전 군 총정치국장 (앞줄 가운데).

지난 4월 북한 최고인민회의 13기 6차 회의에서 실각이 확인된 황병서 전 군 총정치국장 (앞줄 가운데).

최고인민회의에서 나온 황병서에 대한 국무위 부위원장 해임 결정은 이 같은 노동당 검열에 따른 후속 인사 조치 성격으로 풀이된다. 김원홍 전 총정치국 제1부국장도 국무위원에서 해임하고, 대의원 호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핵심 직책에서 물러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서는 또 지난해 10월 노동당 7기 2차 전원회의에서 당 부위원장 자리에서 밀려난 김기남 전 선전선동 담당 비서와 이만건 당 군수공업부장을 국무위원회에서 배제했다.

문제는 황병서의 후임으로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김정각에게 최고인민회의가 국무위 부위원장 자리를 넘겨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김정각 총정치국장은 국무위원에 보임되는 선에 그쳤다. 이에 따라 국무위원회는 김정은을 위원장으로 하고, 최용해 당 조직지도부장과 박봉주 내각 총리 2인이 부위원장으로 이끌어 가는 체제로 운용될 전망이다.

이 같은 조치는 군 서열 1위인 총정치국장의 위상을 격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총정치국은 북한군 핵심 간부들에 대한 인사는 물론 검열과 통제권한을 갖고 있는 막강한 조직이다. 군인들에 대한 사상교양도 이곳에서 맡는다. 통일연구원은 2011년 발간한 [북한의 부문별 조직실태 및 조직분화 변화 종합연구] 보고서에서 “북한군은 육·공군의 합동군제지만 총참모부(우리의 합참에 해당)의 명령보다 총정치국의 결정을 더 중시하는 정치군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총정치국의 권한이 더 크며 북한군 총정치국장은 군대 서열 1위를 넘어 북한 전체 권력 3위에 거명된 적이 있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며 “군대의 상층부뿐 아니라 군단, 사단, 연대로 내려가도 당 조직과 정치위원의 권한은 부대장의 권한을 능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5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때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 / 사진:조선중앙TV

2015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때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 / 사진:조선중앙TV

북한 매체들은 황병서와 김원홍 등에 대한 조치가 “국무위원회 위원장 동지의 제의에 의해 이뤄졌다”고 밝혀 김정은 뜻에 따른 결정임을 분명히 했다. 사실 최고인민회의는 노동당의 결정을 만장일치로 추인하는 게 관례다. 이 때문에 서방 언론 등에서는 적절한 검토 절차 없이 무조건 승인해 버린다는 의미로 ‘고무도장(rubber stamp)’회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실질적인 결정은 최고인민회의 이틀 전 열린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참석해 직접 사회를 본 정치국회의에서 예산안 등이 검토·비준됐고, 이를 최고인민회의에 제출하는 결정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는 게 관영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다.

정치국은 노동당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평상시 모든 당의 사업을 관장하고 조직·지도한다. 노동당이 우위에 있는 당 국가 북한을 이끄는 핵심 축이란 얘기다. 김정은이 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그 결정 내용을 최고인민회의에 반영토록 하는 절차를 거치는 방식을 취한 것도 결국 노동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군내 당 조직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총정치국의 힘을 꺾는 인사 조치를 김정은이 직접 제기한 것은 군부에 대한 견제로 읽혀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 3월 말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정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서도 노동당 챙기기와 군부 견제 양상은 나타났다. 북한 매체들이 공개한 수행원 명단에서 군부의 역할이 미미해지고 노동당과 내각에 힘이 실린 게 드러난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방중에 부인 이설주가 동반했고, 최용해를 필두로 박광호·이수용·김영철 당 부위원장, 이용호 외무상, 조용원·김성남·김병호 당 부부장 등이 수행한 것으로 전했다. 명실공히 북한 2인자로 위상을 굳힌 최용해는 총정치국장을 맡고 있던 2013년 5월 김정은 특사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면담한 바 있다. 또 노동당 비서 시절인 2015년 9월에도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찾았다. 2013년 말 처형당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을 대신해 중국통으로 보폭을 넓혀 왔다는 얘기다.

외교 담당 부위원장인 이수용은 김정은과 김여정이 어린 시절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할 당시 스위스 대사(당시 이수용은 ‘이철’이란 이름을 사용)를 지낸 인물로, 오랜 기간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박광호 당 부위원장은 지난해 10월 조직지도부와 함께 노동당의 양대 축으로 일컬어지는 선전선동부 부장으로 임명됐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노동당 사업을 한 곳으로 알려진 선전선동부를 맡아 신임을 받았고, 당 정치국 위원 등으로 승승장구해 왔다. 조용한 수행으로 ‘김정은의 그림자’로 불려온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과 김정일 중국어 통역 출신인 김성남 당 국제부 부부장도 수행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군부세력이 대남(對南) 화해노선에 반감?

김정은의 신임을 받는 최용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황병서를 비롯한 총정치국 간부 숙청의 전면에 나섰다. / 사진:노동신문

김정은의 신임을 받는 최용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황병서를 비롯한 총정치국 간부 숙청의 전면에 나섰다. / 사진:노동신문

이처럼 김정은의 중국 방문을 수행한 면면은 대부분 노동당의 핵심 실세로 짜여졌다. 특히 김정은 시대 들어 발탁되거나 세대교체를 통해 진입한 고위 인사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말년 중국과 러시아 방문길에 조명록 군 총정치국장이나 김영춘 총참모장와 함께 군부 측근인 현철해·박재경·이명수 대장(당시 계급)을 수행원에 포함시켰던 데 비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김정은의 방중에 포함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 전선부장은 군 정찰총국장 출신이기는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군부 인사라고 간주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당 관료로 변신해 통일전선 업무를 맡아온 데다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남한을 방문하는 등 활동의 폭을 넓혀왔다는 점에서다. 왕샤오커(王簫軻) 지린(吉林)대 동북아연구원 교수는 김정은의 중국 방문 때 북측 수행단에 군부 인사가 없었던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왕 교수는 지난 3월 말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바꾸는 한편, 최용해·황병서가 군복을 입은 장면이 적어지고 각각 국무위 부위원장이나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자격으로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과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군부 힘 빼기가 김정은 권력 내부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 강경파로 간주되는 군부세력이 대남(對南) 화해노선에 반감을 드러내는 건 아닌지를 주시하고 있다. 정상회담은 물론 그 이후 전개될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월 신년사를 통해 평창 겨울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는 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 개선 의향을 밝혔다. 또 2월 9일 개막식 행사를 계기로 동생인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을 특사로 파견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하기도 했다. 김정은은 또 3월 초 워싱턴을 방문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북·미 정상회담 의향을 밝혔고, 회담 개최라는 화답을 얻어냈다. 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 그리고 평양에 설치될 것으로 점쳐지는 미국 연락사무소 등의 현안이 모두 민감한 이슈다. 워싱턴 측에서 “평양에 성조기를 단 수십 대의 캐딜락이 달려도 괜찮겠는가”라고 북한 측에 문의했다는 보도는 이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한반도와 주변 정세에 밀어닥칠 이런 엄청난 변화에 북한 군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 등 관련국들에도 관심거리다.

“이런 식으로 권위 떨어뜨리면 명령에 따르겠나”

최근 들어 실세로 부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왼쪽)이 3월 6일 남한 대북특사단과의 만찬이 끝난 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특사단을 배웅하고 있다. / 사진:노동신문

최근 들어 실세로 부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왼쪽)이 3월 6일 남한 대북특사단과의 만찬이 끝난 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특사단을 배웅하고 있다. / 사진:노동신문

사실 집권 이후 김정은이 보여온 호전적 성향과 군사 모험주의 노선은 북한 군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내정된 시기부터 남한에 대한 극렬 발언을 쏟아내며 군사도발을 감행했다. 2010년에는 3월 천안함 폭침도발을 벌였고, 11월에는 연평도에 포격을 감행해 남북 관계를 얼어붙게 한 것은 물론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갔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급작스레 사망하면서 권력을 거머쥔 김정은은 잇단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로 국제사회의 큰 우려를 샀다. 유엔과 미국은 물론 후견 국가인 중국의 만류나 대북제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도 했다. 앞서 2015년 8월에는 목함지뢰 매설 방식의 도발로 우리 국군 장병들에게 중상을 입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모두가 김정은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북 관계를 유화국면으로 끌고 가는 건 물론이고 미국과의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 시간표를 짜놓았다. 군부 등 평양의 강경파에겐 당혹감을 안겨줄 수 있는 사태 전개일 수 있다.

주목되는 건 북한군 원로 세력과 핵심 고위층을 중심으로 김정은식 군부 다루기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북 소식통은 “빨치산 출신 군부 원로들의 경우 북한 권력에 대해 어느 정도 정치적 지분을 갖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며 “군부 원로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숙청이나 힘 빼기에 대해서는 드러나지 않게 반감을 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무엇보다 김정은 집권 이후 두드러진 군부 고위층에 대한 롤러코스터식 계급 강등과 보직 박탈에 대한 불만이 크다는 것이다. 총정치국장이나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 등 군부 수뇌부에 대해 수시로 벌어진 인사 조치에 대해 원로 세력은 “이런 식으로 권위를 무너트리면 누가 고위 지휘관을 존중하고 그의 명령에 따르려 하겠는가”라고 지적하고 있다는 얘기도 평양으로부터 흘러 나온다.

이런 상황은 아버지인 김정일 통치 시기 군부의 환심을 사는 데 집중했던 것과 다르다. 김정일은 군 고위 간부들에 대해 특각(별장형 고급 주택)과 벤츠 승용차 등을 선물로 제공하며 지지를 유도했다. 업무상 과오를 범하거나 시행착오 등으로 위기에 몰린 군 측근 인사들을 포용함으로써 충성을 더욱 유도하는 통치술도 구사했다. 1996년 조카(현성일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가 남한으로 귀순했음에도 불구하고 총정치국 부국장 현철해 대장을 중용했다.

군부에 권력을 나눠주는 조치도 취했다. 김일성 사망 이후 권력을 공식 승계한 뒤 1998년 7월 치러진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는 687명의 대의원 중 107석이 군인에게 배정됐다. 9기 때 62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김정은 체제에서의 무자비한 숙청과 강등·해임 조치에 대한 불만은 장성택 처형 때 극에 달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12월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반국가 혐의’ 등으로 전격 체포해 사형에 처했다. 공안기관을 총괄하는 노동당 행정부 내의 장성택 계열 인사들에게도 잔혹한 처벌이 가해졌다.

이를 계기로 북한 권력 핵심의 노동당 간부와 군부 고위 인사들은 공포정치에 억눌려 떨어야 했다. ‘고모부까지 저렇게 무참하게 처형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파리 목숨 아니냐’는 생각에서였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지난해 2월에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자신에게 비판적이던 이복형 김정남을 화학무기 원료인 VX를 활용한 테러로 숨지게 했다.

엄중한 감시·통제망에 취중진담도 꺼려

한때 북한 최고 실세였던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왼쪽)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처형당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 사진:노동신문

한때 북한 최고 실세였던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왼쪽)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처형당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 사진:노동신문

앞서 2015년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당한 건 군부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김정은은 처형 집행 장소인 강건 군사종합학교에 추종세력은 물론 처형당하는 인사의 가족과 며느리, 미성년 손주까지 참관토록 했다고 한다. 또 극도의 수치감과 공포감을 느끼도록 한다며 옷을 벗겨 내세우도록 했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빨치산 출신 군부 원로들은 “60~70대 고령 간부를 어린 손주를 포함한 가족들과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가벗겨 숨지게 하는 건 젊은 지도자의 광기 어린 행동”이라며 분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불만을 조직적으로 표출하거나 반발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역부족이다. 폭압적 통치체제 속에서 군부와 노동당의 핵심 간부들도 그물망 같은 감시체제의 예외가 아니란 얘기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 전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2016년 7월 탈북·망명한 태영호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국회 정보위 간담회와 강연 등을 통해 “현영철이 처형된 건 집에 가서 얘기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태 공사에 따르면 현영철은 집안에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는 줄 모르고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만을 말했다가 감시망에 걸려들었다. 군부의 최고 실세조차도 집에서 편안하게 이런저런 말을 꺼낼 수 없는 게 현재의 김정은 체제란 얘기다. 태 공사가 “북한에서는 직위가 올라갈수록 감시가 심해져 자택 내 도청이 일상화돼 있다”며 “엘리트층은 마지못해 충성하는 시늉만 내는 상황”이라고 말한 대목에서도 이런 상황을 엿볼 수 있다.

군부와 당·내각 고위 인사에 대한 물샐 틈 없는 감시·통제망을 증언하는 탈북 인사의 주장도 있다. 체코에서 조선·체코신발기술합작회사 대표를 맡다 한국행을 택한 김태산 씨는 “부총리급 이상 고위직 인사들의 동향은 인민보안성 등이 30분 단위로 파악해 보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고위급 인물이 외부에 지도사업을 나가면 1시간 단위로 보고하게 된다”며 “총리나 부총리급에 대한 감시 내용은 각 지방의 노동당과 보위성·인민보안성은 물론 3대 혁명소조까지 포함한 4개 단위에서 30분 주기로 보고 한다”고 주장했다. 공안기관 출신 다른 탈북자는 군부 고위 인사에 대한 감시 시스템도 강도 높게 작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대장 이상 군 간부들의 경우 100% 감청을 당한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일단 공안기관이 감시 대상으로 올리면 해당 인사의 사무실은 물론 집에도 보위성 요원 등이 전화 수리공을 가장해 들어간 뒤 도청장치를 설치해 지속적으로 동향을 감시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평양의 군 핵심 인사들뿐 아니라 전방부대의 상급 지휘관들은 통신을 이용해 대화하는 걸 기피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북한군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가동되는 한·미 정보 당국의 대북 감청망에도 북한의 군부 인사들이 통상적인 업무 대화 외에 다른 내용이 포착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영철의 경우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철저한 통제체제를 잘 알고 무척 조심하고 있다지만, 취중에 진담을 꺼내버려 낭패를 당하거나 믿었던 동료나 부하로부터 배신당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무력을 장악한 군부와 공안기관의 핵심 실세들이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워낙 철저한 통제체제와 보안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어 사전에 이상 징후를 감지하거나 대응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관련자들의 전언이다. 장성택 처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김정은은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을 동원해 은밀하게 장성택과 그의 추종세력을 감시했다. 철통 보안 속에 체포 작업이 이뤄져 장성택과 그의 권력 기반인 노동당 행정부(공안기관 담당)의 핵심 실세들도 미처 손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마음속의 짐 싸둔 채 여차하면 탈북 결행할 채비

한때 국가보위상(한국의 국정원장)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주관한 행사에 참석했던 김원홍(오른쪽)도 보직 해임당했다.

한때 국가보위상(한국의 국정원장)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주관한 행사에 참석했던 김원홍(오른쪽)도 보직 해임당했다.

물론 이런 철저한 감시체제 속에서도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위해설이나 쿠데타 관련 서방 언론의 보도는 김일성·김정일 시기부터 심심치 않게 나왔다. 과거 소련 푸룬제 군사 아카데미 출신 군부 인사들이 주도한 정변설이나 청진 6군단의 쿠데타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3대 세습을 거치며 철두철미하게 짜인 감시체계나 권력 운용의 노하우는 반체제 세력의 준동이나 군부의 군사행동을 불가능에 가깝게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 장기 외유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김정일은 사망 넉 달 전인 2011년 8월 말 러시아 방문에 나섰다. 열차를 이용한 장기 체류 일정이었다. 당시 후계자 신분이던 김정은은 평양의 정국 관리를 맡았다. 그때는 마침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평양 권력의 안정성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린 시기였다. 정보 당국은 김정은이 2010년 9월 노동당 대표자회에서 얻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과 북한군 대장 지위로 군부와 노동당을 장악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 방문 일정을 비교적 길게 잡은 건 김정은에게 맡겨놓아도 군부 쿠데타 등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에도 몇 차례 신변이상이나 쿠데타설이 나왔다. 2014년 9월 전용 의료시설인 평양 봉화진료소에서 발목관절 수술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을 때도 한 달가량 칩거하던 김정은의 상태에 서방 정보기관의 관심이 쏠렸다. 당시 중국과 서방 외교가에선 건강이상설이 퍼졌고 곧이어 군부 쿠데타설과 식물인간·사망설까지 걷잡을 수 없이 소문이 번져 나가기도 했다. 당시 대북 감청 전담 ‘쓰리세븐(777)부대’나 미국 측 서슬락(SUSLAK, 주한 미특별연락고문관)은 평양 봉화진료소와 집무실, 호위총국 통신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통신량이 급증하거나 아예 교신이 없는 ‘통신침묵’ 등 변고의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었다는 게 정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물론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처형·숙청 같은 김정은식 강압통치로 간부층의 동요가 심화되고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는 등 체제의 불안정성이 가중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무차별적인 김정은의 통치방식에 엘리트 세력들이 “언제 내가 숙청 대상이 될지 모른다”며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토사구팽(兎死狗烹)식으로 물고 물리는 시스템 아래서는 누구도 숙청행렬에서 예외일 수 없고, 결국 번호표를 뽑아 들고 무작위로 대기하는 운명을 벗어나긴 어렵다는 인식에 젖어 들고 있는 분위기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영화 '강철비' 상황 같은 최악 시나리오까지

영화 [강철비]에서는 쿠데타 세력에 의해 북한 최고지도자가 부상을 입고 군 핵심 지휘관이 제거된다.

영화 [강철비]에서는 쿠데타 세력에 의해 북한 최고지도자가 부상을 입고 군 핵심 지휘관이 제거된다.

무엇보다 집권 7년차에 접어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부실한 지도력에 실망감을 맛본 북한 권력의 엘리트 계층이 마음속의 짐을 싸둔 채 여차하면 탈북을 결행할 채비를 하고 있다는 진단이 눈길을 끈다. 해외에 근무하거나 체류 중인 엘리트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할 수 있다. 대사관이나 무역 대표부 등 해외 근무로 인해 외부 사정에 밝은 계층은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누구보다 잘 파악할 수 있다. 영어에 능통하고 서구문물에 익숙해 서방 또는 한국행을 택하더라도 큰 부담이 없을 수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미 비공개리에 한국에 온 고위 엘리트가 수십 명에 이르고 서방으로의 망명 사례까지 포함하면 증가 추세란 말이 국내 정착 핵심 탈북자 사이에서 흘러나온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양우석 감독의 영화 [강철비]는 개성 공단을 방문한 ‘북한 1호’(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을 지칭)를 제거하려는 시도와 함께 북한에서 군부 주도의 쿠데타가 발생하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북한 최정예 요원인 엄철우(정우성 분)는 치명상을 입게 된 ‘1호’를 차량에 태워 남한으로 넘어온다. 이 과정에서 평양 권력은 한·미 측에 선전포고를 하고 핵 전쟁 위기로 치닫는 스토리로 영화는 전개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을 받아들였다. 2000년 평양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서울 답방’을 문서로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도 평양에서 개최됐다. 그런 부담 때문에 김정은은 서울이나 제주 등 남한 내 회담 개최를 검토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을 수 있다. 그만큼 남한행에 부담이 따른다는 얘기다.

결국 절충으로 택한 게 판문점 남측지역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겨우 ‘남한 답방’이란 생색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결정한 것이다. 김정은의 신변을 챙겨야 하는 노동당 서기실과 호위총국 등 경호 부처는 초비상일 수밖에 없다.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사 관할 판문점에 자신들의 최고지도자를 머물게 해야 하는 데다 평양의 권력상황과 최전방 군부의 동향까지 장악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북측으로선 영화[강철비]의 상황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대비해야 할 형편이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보다 훨씬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북·미 정상회담도 기다리고 있다. 체제 생존을 위한 메가톤급 이슈를 앞둔 김정은의 북한 군부 다루기는 점점 더 까다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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