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북서부의 도시 맨체스터를 말하면 먼저 붉은색이 떠오른다. 맨체스터를 연고로 한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유니폼 색깔이다. 맨유는 알렉스 퍼거슨(77) 감독 시절을 포함해 역대 최다인 20차례나 우승을 차지했다. 맨유는 도시를 상징하는 팀이었다.
프리미어리그 맨시티 조기 우승 #같은 연고팀이자 라이벌 맨유 제쳐 #과르디올라 감독 2시즌 만에 정상 #막강 군단 맨유 2위도 위태위태
하지만 최근 맨체스터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맨체스터가 붉은색이 아닌 하늘색으로 물들고 있다. 하늘색은 같은 연고팀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의 유니폼 색깔이다. 맨시티는 1968년 리그 우승 이후 중하위권을 맴돌아 ‘맨체스터의 2류팀’으로 불렸다. 하지만 2018년엔 사정이 달라졌다.
맨유는 16일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꼴찌’ 웨스트브러미치에 0-1로 충격패를 당했다. 2위 맨유(22승5무6패·승점71)는 1위 맨시티(28승3무2패·승점87)와 승점 16점 차를 좁히지 못했다.
맨유가 남은 5경기를 모두 이기더라도 맨시티를 따라잡을 수 없다. 2010년 이후 열린 8시즌 중 맨시티는 3번째 우승을 확정 지었다. 맨시티는 지난 2011~12, 2013~14시즌 정상에 올랐다.
맨시티는 올 시즌 33경기에서 무려 93골을 터트렸고, 실점은 25점에 그쳤다. 한 경기에서 6골 이상을 몰아넣는 경우도 종종 나오자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 빗댄 ‘식스 앤 더 시티(Six and the City)’란 별명도 얻었다.
맨시티의 구단주는 석유 재벌인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47·아랍에미리트)이다. 자산이 41조원(추정치)인 만수르는 2008년 3000억원을 투자해 맨시티를 인수했다. 만수르 구단주는 지금까지 2조원이 넘는 ‘오일 머니’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맨시티가 돈으로 우승을 산 건 아니다.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은 라이벌 맨유도 마찬가지다. 맨유는 2016년 폴 포그바를 1300억원 주고 데려왔고, 지난해 로멜루 루카쿠를 1111억원에 영입했다.
호화 군단 맨유를 물리치고 맨시티가 우승을 차지하기까지는 ‘우승청부사’ 펩 과르디올라(47·스페인) 감독의 공이 컸다. 그는 스페인과 독일에 이어 잉글랜드까지 접수했다.
그는 2008년 바르셀로나를 이끌고 3관왕(리그·컵대회·챔피언스리그)에 올랐고, 2013년부터는 독일 바이에른 뮌헨의 3시즌 연속 분데스리가 우승을 지휘했다. 맨시티 감독을 맡은 지 2년째인 과르디올라 감독은 스페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프리미어리그까지 정복했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과르디올라가 첫 시즌 리그 3위에 그치자 영국 언론은 ‘여기는 잉글랜드다. 그의 축구는 통하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과르디올라는 ‘영국축구가 안되는 이유는 그동안 해온 것만 해왔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며 “과르디올라는 볼 점유율 극대화, 강력한 압박, 골키퍼·수비수부터 시작되는 공격 등 그동안 영국에서 보지 못했던 축구를 펼쳤다. 과도기를 거쳐 올시즌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축구철학을 EPL에 적합한 형태로 튜닝시켰다. 토털사커(전원공격 전원수비)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도록 삼각 대형을 만들었다. 왼쪽수비수 멘디가 부상당한 자리를 미드필더 델프로 메우는 포지션 파괴도 돋보였다”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클럽하우스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금지는 물론 피자도 먹지 못하게 한 과르디올라의 리더십도 통했다. 그러면서도 과르디올라는 맨유-웨스트브러미치의 경기를 지켜보지 않고 그 시간에 아들과 골프를 쳤다. 망중한을 즐기면서 지도자로서 23번째 우승을 확정했다.
맨시티 미드필더 케빈 더 브라위너(27·벨기에)의 활약도 돋보였다. 그는 택배처럼 정확한 패스로 어시스트를 15개나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조제 모리뉴 맨유 감독이 첼시 사령탑 시절이던 2013년 중용하지 않았던 선수가 바로 더 브라위너다. 모리뉴 맨유 감독은 “맨시티는 올 시즌 최고의 팀이라 우승한 것이다. 단 2경기밖에 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맨유 구단은 웨스트브러미치에 패한 뒤 공식 트위터에 ‘맨시티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맨유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맨유는 3위 리버풀에 승점 1점 차로 쫓겨 2위 자리마저 위태위태하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