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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디지털 신인류 출현.."100만 팔로워 군단"으로 '일 낸' 10대들

중앙일보

입력

요즘 10대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SNS)에서 많은 걸 해결한다. 얼굴을 보지 않고도 불특정 다수와 관계를 맺는다. 세계 곳곳의 뉴스를 보고 또 만든다. 디지털 세상에서 자라고 철이 든 이른바 ‘소셜미디어 네이티브(native·원주민)’다.

美 총기 참사 고교 학생들 SNS서 연대 이끌어 #전세계 일깨운 Z세대..."주인 없는 운동, 폭발적 힘" #인도·방글라데시 등서도 '젊은' 투쟁 잇따라

이들은 SNS상에서 부조리·불합리를 고발하는 여론을 만들고 퍼뜨린다. 가상세계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위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17명의 피해자가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 그랬다.

SNS로 연대한 10대, 일냈다

엠마 곤잘레스. [AFP=연합뉴스]

엠마 곤잘레스. [AFP=연합뉴스]

“내 친구 카르멘은 더는 내게 피아노 연습을 불평할 수 없게 됐다.”

삭발한 머리에 결연한 표정으로 연단에 섰지만,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임은 감출 수 없었다. 희생된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엠마 곤잘레스의 눈에선 끝내 눈물이 흘렀다. 곤잘레스는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청년 시위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쿠바 이민자 가정의 평범했던 여고생이 미국 총기규제 운동의 상징이 됐다.

곤잘레스는 참사 직후부터 방송 인터뷰 등서 목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SNS서는 행진의 기폭제가 된 ‘네버 어게인(더는 안 된다)’ 등의 해시태그 운동을 이끌었다.

지난 2월의 참사 나흘 뒤 시작한 그의 트위터에는 불과 열흘 만에 100만명 넘는 팔로워 군단이 생겼다(CNN). 2009년 트위터를 시작한 전미총기협회 팔로워 수(59만4000명)를 능가하는 수치다. 그가 “나라를 넘어 전 세계의 지지를 받았다”고 말할 만하다.

 데이비드 호그.[로이터=연합뉴스]

데이비드 호그.[로이터=연합뉴스]

 “대중의 관심이 줄어들까 두려웠다”는 생존 학생 데이비드 호그는 참사 이틀 뒤 트위터 애플리케이션 페리스코프를 통해 본인이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 중계했다. 여기엔 변화를 희망하는 생존 학생들의 절절한 목소리가 담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정치인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며 “영상을 공유해달라”고 외치는 호그에게 3만3000명 넘는 시청자들이 답했다. “변화의 중심이 되자”면서다.

 참사 한 달여 뒤 열린 대규모 행진이 증명했다.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호주 시드니, 일본 도쿄 등에서 글로벌 전사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SNS로 알렸다. 파리 에펠탑 인근서 열린 집회 현장 사진을 올린 로렌 보스의 트위터에는 “다른 많은 나라에서 미국과 연대해 행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생존 학생 재클린 코린은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무기’다. 이것 없이 이 운동은 그렇게 빨리 퍼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타임지).

프랑스 파리에서 올린 행진 사진. [트위터 캡처]

프랑스 파리에서 올린 행진 사진. [트위터 캡처]

 Z세대가 이끈 풀뿌리 개혁…“주인 없는 운동의 폭발성”

기성세대는 희망을 봤고, 언론은 이전에 없던 ‘이례적 행동’이라며 주목했다.

1999년 13명의 희생자를 낸 콜럼바인 총격 사건의 생존자 멜리사 스트라스너는 “놀라운 아이들은 용기와 웅변으로 저항했다. 진정 이 나라와 나를 일깨웠다. 우리는 변화가 가능한 순간에 있다”고 말했다.

졸란다 아놀드는 “비참한 처지를 탓하며 모두 구멍으로 숨어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어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놀드는 2013년 워싱턴 해군기지에서 일어난 총격으로 남편을 잃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 [EPA=연합뉴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서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 [EPA=연합뉴스]

 언론에선 “새로운 세대의 정치적 행동주의(뉴욕타임스)”, “20년 만에 가장 강력한 풀뿌리 총기 개혁 운동(타임지)” 등의 평가가 나왔다.

 특히 디지털 신(新) 인류, SNS의 힘에 초점을 맞췄다.

 WSJ은 “소셜미디어의 힘과 언어를 가진 디지털 세대가 해시태그로 시작한 움직임이 불과 며칠 만에 전 국가적 현상이 됐다. 기업과 정치인이 꿈만 꿔 온 캠페인”이라고 했다. CNBC는 “이 운동의 토대는 총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 없는 세상을 모르는 Z세대(Gen Z)와 발언권의 힘을 이용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그들의 의지와 능력에 관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미 컬럼비아대학교의 에드 모랄레스 교수도 “생존 학생 중 가장 강경하게 목소리를 높여 온 엠마 곤잘레스와 그의 Z세대 친구들이 행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앤드류 힐은 “해시태그 운동에는 주인이 없다. 이것이 이 운동을 강하게 만드는 힘의 원천”이라며 “새로운 파워 운동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협력·개방·참여적”이라고 풀이했다.

◇제3세계서도 젊은 혁명 이어져

 젊은 세대의 ‘혁명’은 미국만의 얘기가 아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전 총리는 기고 전문매체 프로젝트신디케이트에 3일(현지시간) 올린 글에서 “전 세계 곳곳에서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권리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다”며 “이런 새로운 움직임은 이들이 자국 또는 국경을 넘어 점점 더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디지털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비하르 주에서 1월 열린 인간 띠 시위. [힌두스탄 타임스 캡처]

인도 비하르 주에서 1월 열린 인간 띠 시위. [힌두스탄 타임스 캡처]

앞서 지난 1월 인도 동부 비하르 주에서는 조혼이란 악습에 항의 표시로 어린이 등 4000만명이 1만4000㎞에 달하는 인간 띠를 만들었다. 조혼율이 높은 방글라데시에서도 수천 명의 소녀가 아동 결혼을 막자는 취지로 ‘웨딩 버스터스(wedding busters)’ 운동을 이끌고 있다.

1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열린 아동 결혼 반대 시위에 참석한 소녀들. [EPA=연합뉴스]

1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열린 아동 결혼 반대 시위에 참석한 소녀들. [EPA=연합뉴스]

페루 리마에서는 무급으로 인턴을 고용하는 데 분노한 학생들이 ‘청소년 노예법(Youth Slave Law)’을 없애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 공격으로 학생들이 위협받는 나이지리아에서도, 치솟는 교육비가 문제인 온두라스에서도 청소년들의 외침이 이어지고 있다.

 브라운 전 총리는 “젊은 세대의 외침은 자선을 위한 눈물 어린 탄원이 아니라 정의를 요구하는 도전적 행진”이라면서 “약속을 이행하는 데 실패한 1960년대 문화혁명 시대의 아이들이었던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라고 평가했다.

황수연 기자·이동규 인턴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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