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미 연구소 지원 중단 논란, 투명하게 해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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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 연구소(USKI)에 대해 12년째 매년 20억원씩 제공해 온 예산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 연구소 측은 “한국 정부가 소장인 구재회씨의 경질을 여러 번 요구했다가 거부당하자 예산을 끊기로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로버트 갈루치 한·미 연구소 이사장은 “조윤제 주미대사를 포함해 한국 대표자들로부터 구 소장을 교체하라는 요구를 계속 받아 왔다”고 말했다. 갈루치는 워싱턴 조야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비둘기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청와대에서 그를 만나 조언을 들었을 정도다. 그 갈루치가 “청와대 내 한 사람에 의해 (경질 압박이)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다. 문 대통령 접견 때는 영광스러웠는데 지금은 실망스럽다”며 정부를 원망하고 있다.

구 소장은 본지에 “10년 전 방문학자로 연구소를 찾은 이재오 전 의원을 배려한 게 (경질 압박의) 발단”이라고 말했다. 한·미 연구소에는 이 전 의원 같은 야권 인사뿐 아니라 양정철 전 비서관 등 여권 인사도 많이 찾았다. 정파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써 온 연구소 입장에서 소장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아 해임을 요구했다면 갈루치 말마따나 ‘학문의 자유에 대한 부적절한 개입’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와대는 8일 연구소 지원을 중단한 이유에 대해 “매년 20억원 넘는 예산에도 한두 장짜리 보고서가 전부였고 실적 평가가 굉장히 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 소장은 “매년 3000~5000쪽에 달하는 사업 내역 보고서를 보냈다. 나중엔 ‘너무 많다’며 부담감을 표하길래 USB로 보냈을 정도”라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 국민은 혼란스럽다. 정부는 지원 중단 이유를 투명하게 밝혀 의혹을 해소해 주기 바란다. 특히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논란에 대해 확실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