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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못 했을 일, '사랑'이란 이름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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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30) 영화 ‘달링’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반지의 제왕의 골룸, 킹콩의 킹콩, 혹성탈출의 시저, 스타워즈의 스노크까지. 이들의 공통점, 짐작 가시나요?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모션 캡처의 달인’이라 불리는 이 배우를 금세 떠올리실 수 있습니다. 바로 앤디 서키스죠. 명실상부 최고의 모션 캡처 배우라 알려진 그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가지고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화 '달링'의 실제 주인공 로빈의 젊은 시절부터 노년의 모습까지 연기하며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 '앤드류 가필드'. [사진 목요일 아침 제공]

영화 '달링'의 실제 주인공 로빈의 젊은 시절부터 노년의 모습까지 연기하며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 '앤드류 가필드'. [사진 목요일 아침 제공]

차(tea)를 수출입하는 직업을 가진 로빈(앤드류 가필드 분)은 어느 날 크리켓 볼 경기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다이애나(클레어 포이 분)를 만나 한눈에 반하게 되죠. 서로에게 물들듯이 사랑에 빠져버린 두 사람은 만남에서부터 결혼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집니다.

결혼 후 무역업을 하는 로빈 때문에 케냐에서 살게 된 그들은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요. 신이 이들의 사랑을 질투한 걸까요. 준비도 없이 엄청난 시련이 다가옵니다.

영화 '달링'의 로빈 역의 앤드류 가필드와 다이애나 역의 클레어 포이. [사진 목요일 아침 제공]

영화 '달링'의 로빈 역의 앤드류 가필드와 다이애나 역의 클레어 포이. [사진 목요일 아침 제공]

로빈이 바로 폴리오바이러스에 감염된 거죠. 하루아침에 온몸이 마비되고 심지어는 인공호흡기 없이 호흡조차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자가 호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충격적인 말도 이어졌죠.

용어사전폴리오바이러스(polio virus)

소아마비의 병원체로 바이러스 중에서는 가장 작고 지름 27nm이며, 정이십면체 동물바이러스로서는 처음으로 결정화되었다. 내부의 리보핵산과 외피인 60개의 단백질 소단위로 이루어진 리보핵산 RNA형 바이러스이다. 신경세포에서 증식하여 신경세포를 파괴하는데, 주로 수족의 마비를 일으키거나, 호흡마비를 일으킨다.

감염자의 구강·식도·장관으로부터 배출되거나, 보유자의 대변·파리·하수로부터, 또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된다. 감염한 바이러스는 위·장관에서 증식하고 림프계를 통하여 혈류로 들어가 신경세포에 이르러 거기서 증식하여 신경세포를 파괴한다. 주로 척수전각회백질의 운동신경을 침해하여 수족의 마비를 일으키고, 또 뇌간의 신경세포를 침해하여 호흡마비를 일으킨다.

로빈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몸을 보며 심한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었죠.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까지도요.

이런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바로 다이애나와 친구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룬 일들을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집에 가고 싶다는 로빈을 위해 의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데려가고, 아들의 유모차를 보고 친구 테디 홀의 도움을 받아 인공호흡기가 달린 일명 '로빈 휠체어'를 개발해 어디든 함께 다녔습니다.

몸도 마음도 상처입은 로빈을 일으켜 세운건 바로 그의 아내 다이애나와 친구들이었다. [사진 목요일 아침 제공]

몸도 마음도 상처입은 로빈을 일으켜 세운건 바로 그의 아내 다이애나와 친구들이었다. [사진 목요일 아침 제공]

이에 머무르지 않고 어니스트 클라인워트(Ernest Kleinwort) 자선 신탁 기금과 영국 보건국을 설득해 12개의 휠체어를 제작했죠.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자유를 선물해 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 밖에 자선 기금을 모으고, 휴양센터를 건설하는 등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로빈은 1974년 영국 왕실로부터 대영제국 훈장(MBE)를 받기도 했습니다.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아니 관심조차 없었을 일들을 그가 장애인이었기에 이루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20년 이상을 살아낸 로빈에게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죽음'의 시간이 찾아오는데요. 로빈과 가족들, 친구들은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각자 준비합니다. 그중에서도 다이애나가 로빈에게 한 마지막 인사가 인상적입니다.

당신과 함께여서 완벽한 삶이었어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준 배우자에게 이 말 이외에 최고의 찬사가 또 있을까요.

영화 '달링'은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희생과 헌신이 함께하는 사랑을 통해 어떤 일들을 이루어 냈는지 보여준다. [사진 목요일 아침 제공]

영화 '달링'은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희생과 헌신이 함께하는 사랑을 통해 어떤 일들을 이루어 냈는지 보여준다. [사진 목요일 아침 제공]

'달링'을 보면 떠오르게 되는 비슷한 영화들을 몇 작품 살펴보겠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 마비 장애를 얻은 윌과 그의 간병인 루이자의 이야기를 다룬 ‘미비포유’, 갑상선 암을 앓아 산소통을 끼고 사는 16세 소녀 헤이즐과 골육종으로 다리를 잃은 소년 어거스티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안녕 헤이즐’이 있습니다.

이 두 영화의 경우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달링'은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희생과 헌신이 함께 하는 사랑을 통해 어떤 일들을 이루어 냈는지 보여주죠.

또한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과 그의 아내 제인 와일드의 이야기를 다룬 ‘사랑에 대한 모든 것’과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는 점과 두 영화의 남자 주인공(스티븐 호킹, 로빈 캐번디시)이 전신 마비를 가지고 있었다는 두 가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죠. 실존 인물을 연기한 두 남자 주인공, 에디 레드메인과 앤드류 가필드의 연기를 비교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영국 물리학자인 스티브 호킹 박사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한 장면. [사진제공=UPI KOREA]

영국 물리학자인 스티브 호킹 박사의 젊은 시절을 그린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한 장면. [사진제공=UPI KOREA]

이 영화는 로빈과 다이애나의 실제 아들인 조나단 캐번디시가 영화의 제작을 맡았습니다(영화 속에서도 등장합니다). “역사상 가장 큰돈을 들여 만든 홈 무비”라는 농담과 함께 "영화 속 많은 대사가 실제로 일어났던 대화"라고 전했는데요. 감독을 맡은 앤디 서키스는 환상적인 러브 스토리일 뿐 아니라 진실하고 유머가 담겼기 때문에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하다고 말했죠.

영화 속에서도 등장하지만, 신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 말은 상대에 따라 힘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마치 힘들단 사람에게 단순히 '힘내!'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이 영화를 보며 느꼈습니다. 신이 고통을 준다면,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건 신의 영역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의지'와 '사랑'이라는 걸요.

달링

영화 '달링' 메인포스터.

영화 '달링' 메인포스터.

감독: 앤디 서키스
각본: 윌리엄 니콜슨
출연: 앤드류 가필드, 클레어 포이
촬영: 로버트 리처드슨
음악: 니틴 소니
장르: 로맨스/멜로/드라마
상영시간: 118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8년 4월 12일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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