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로웨나와 몽이 진정한 이웃이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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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출신 몽씨. 그의 나이 고작 열여덟 살. 몽의 부모는 딸이 편히 살 수 있고 뭉칫돈도 생긴다는 말에 딸을 한국 남자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몽은 결사반대했지만, 계약을 위반하면 세 배의 돈을 물어야 해 별도리가 없었다. 몽과 또래 처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한국 남성들이 들어와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골라 데리고 나갔다. 몽도 서른다섯 살의 한국 남성에게 낙점돼 하루 만에 결혼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온 뒤 칼로 손목을 그어 자해했다. 놀란 남편이 이혼을 해줘 몽의 결혼생활은 한 달 만에 끝나고 말았다.

국제결혼이 연상녀-연하남 커플보다 흔한 세상이 됐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신혼부부 여덟 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을 했다. 특히 농어촌 총각 세 명 중 한 명은 이국의 신부를 데려와 가정을 꾸렸다. 농촌 지역에서 또 다른 로웨나나 몽은 희귀한 구경거리가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이나 이웃으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최근 들어 국제결혼 가정이 자리 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한국어 교실이나 문화교실 등을 여는 지방자치단체도 부쩍 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통계청 발표는 국제결혼 가족에 대한 범사회적 뒷받침이 여전히 부족함을 보여주고 있다. 2005년 외국인 처와의 이혼건수는 2004년에 비해 52%나 증가했다. 로웨나와 같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가정도 많지만 파탄에 이르는 가정 또한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여전히 많은 수의 외국인 아내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고, 10명 중 한 명은 남편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결혼했다.

이주여성인권센터와 같은 상담창구에 접수된 사례를 보면 결혼알선 업체를 통해 만남에서 결혼으로 직행하는 경우 파탄이 예고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알선 업체의 광고 사이트에는 "순종적이고 생활력 강하며 현모양처를 미덕으로 삼는 ○○국 여성이 일등 신붓감"이라고 선전하고 있었다. 동네에서는 "○○ 처녀와 결혼하세요. 초혼.재혼.장애인.나이 많은 분, 후불제도 가능해요"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도 쉽게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매매혼적인 성격마저 다분하다. 한국 여성들에게서 외면당한 농촌 총각들의 처지를 감안하면 이 같은 결혼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대로 방치하기엔 예상되는 사회적 파장이 너무 크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말 한마디 못하는 신부와 함께 살길도 막막할 것이다. 이들을 도와줄 사회적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 한국 문화에 동화될 것을 강요만 할 게 아니라, 아내 나라의 문화를 가족들이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론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단란한 가정이라 해도 외국인 아내의 고충은 크다. 한 몽골 여성은 기자에게 "해산물이라곤 먹어 본 적이 없어 요리하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좌식 생활도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자녀 교육문제를 꺼내자 땅이 꺼질 듯 한숨짓는 여성도 있었다. 이들의 고단한 한국생활이 안쓰럽기만 했다.

로웨나처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활약할 것인가, 아니면 몽처럼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만 남긴 채 떠나갈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과 대책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론 찾을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순혈주의를 떨쳐버리고 가슴을 열어 그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문경란 논설위원 겸 여성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