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먹칠한 공무원의 「한탕」-정순균<사회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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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올림픽을 국민적 축제로 승화시키자는 분위기에서 전직 국회의원과 고급공무원 등 56명이 이를 「한탕」하는 기회로 이용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주고받은 뇌물은 모두 1억9천만원이라지만 6공화국 출범이래 가장 많은 수의 공무원이 관련된 비리사건으로, 그것도 서울시·조달청·주택공사·한국전기통신공사·근로복지공사·한국마사회 등 이른바 주요부서 공무원들이 「떡고물」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는 점에서 분노와 배신감까지 갖게된다. 조달청은 국장에서부터 과장·계장·행정주사·전기기사에 이르기까기 서로 앞다투어 「떡고물」탕을 내다 쇠고랑을 찼다.
여름철 쇤 음식에 파리 들끓듯 너나 할것 없이 납품업자에게 손을 내민 셈이다.
이처럼 관련자가 많다보니 뇌물액이 2백만원 이상인 16명만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그 이하는 불구속 입건했다는 수사 관계자의 설명은 차라리 어처구니가 없다.
깨끗하고 정직한 정부를 내세우며 6공화국 정부가 출범한지 4개월.
그러나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공무원 사회가 아직까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구나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더러는 극히 일부 공무원의 잘못으로 몰아붙이거나, 그들의 범죄행위가 대부분 5공화국때 저질러진 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극히 일부」라고 치부하기에는 관련 공무원이 너무 많고 그들의 범죄행위중 상당부분이 6공화국 들어서도 태연히 저질러진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눈만 뜨면 들려오는 「5공화국비리」소리에 찌든 국민들은 이젠 깨끗한 정부를 목마르게 바라고 있다.
이때문에 이번의 대규모 공무원비리 소식은 국민들에게 그만큼 큰 실망과 충격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정직하고 깨끗한 구성원 없이 정직하고 깨끗한 정부는 불가능하다. 떡고물이 횡행하고 급행료가 힘을 쓰는 공무원사회에서 어떻게 양질의 대국민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모든 공무원들은 이번 사건을 몸가짐을 똑바로 하고 한번쯤 자기주위를 살퍼보는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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