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고아 80만 "탈레반 될라 … "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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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만세아의 가리하비블라 난민촌 아이들이 지난달 30일 구호단체가 주는 물품을 받기 위해 몰려들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재원이 바닥났다며 이달부터 이곳 난민촌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만세아=강병철 기자

지난해 10월 초대형 지진으로 무려 3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파키스탄의 만세아와 카슈미르의 무자파라바드에도 봄은 오고 있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잃은 채 돌아갈 곳도 없는 이재민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은 봄 소식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날씨가 좋아졌다며 공식적인 구호활동을 지난달 31일로 종료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난민촌을 지원하던 세계 각국의 구호단체들도 전략을 바꾸고 있다. 세 곳의 난민촌을 지원한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의 정정섭(65) 회장은 "식량 배급 위주의 1차 구호활동에 이어 고아원 설립, 영어.컴퓨터 강습, 직업훈련원 운영을 통해 2차 구호활동에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

◆ 탈레반이 되는 것을 막자=지진으로 부모를 모두 잃은 뒤 만세아의 소할 난민촌에서 겨울을 보낸 디디아(7)는 이곳마저 사라지면 오갈 데가 없게 된다. 마땅히 디디아를 맡아 키울 친척도 없고 이 지역 내 고아원 설립도 여름이 지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350만 이재민 중 디디아처럼 갈 곳 없는 고아를 80만 명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난민촌을 해체한 뒤 인근 장소에 현대식 고아원을 설치할 계획이다.

파키스탄 정부가 난민촌을 해체하고 현대식 고아원을 지을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는 딴 데 있다. 고아들의 탈레반화(化)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이 없어 해외 구호단체에 손만 벌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제개발원(IDI)의 오조셉(70) 파키스탄 지부장은 "만세아 지역은 1970년대부터 아프가니스탄보다 앞서 학생에게 코란만 가르치는 탈레반 운동이 일어난 곳"이라며 "만세아 군청(郡廳) 측에서 9000여 평의 부지를 제공할 테니 IDI 측에서 고아원을 운영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 영어와 컴퓨터가 살 길=파키스탄-인도 간 영토 분쟁 지역으로 무장단체들의 폭탄 테러가 빈번한 카슈미르의 수도 무자파라바드에 지난달 30일 조그마한 컴퓨터 학원이 생겼다. 기아대책기구의 지원을 받아 장애인과 이재민을 위해 열린 무료 컴퓨터 학원이다. 운영자인 무스타크 아하드(39)는 "무자파라바드에는 지진으로 인해 다리를 심하게 다친 장애인들이 많다"며 "컴퓨터를 통해 이들이 취업 전선에 나설 수 있도록 교육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영어 교육도 2차 구호활동의 핵심이다. 카스트 제도가 있는 인도와 달리 파키스탄에서는 영어를 하느냐 못하느냐가 신분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학생 600명 중 수업을 듣다가 500명이 지진으로 압사한 만세아의 발라콧 고등학교에서도 이재민 학생들의 영어 열기는 뜨거웠다. 지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야심 젤라미(18)는 "학교가 무너져 야외에서 수업을 받고 있지만 영어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며 "영어를 열심히 배워 한국 같은 외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진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조한 아메드(43) 변호사는 "이들이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구호단체에 영어 교사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고 답했다.

만세아(파키스탄).무자파라바드(카슈미르)=강병철 기자

파키스탄 지진

지난해 10월 8일 카슈미르의 무자파라바드에서 리히터 규모 7.6의 강진이 일어났다. 이 사고로 이곳과 인근 파키스탄 북서변방주의 만세아 등에서 8만7000명이 사망하고 3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만세아는 지진 발생 후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촌이 돼버렸다. 한국에서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랜드가 이 지역에서 난민촌 세 곳(가리하비블라.비시안.소할)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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