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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우승은 눈물로 만들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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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박정아가 친정팀 IBK기업은행에 비수를 꽂으며 도로공사에 첫 우승을 안겼다. 챔프전 MVP 박정아(가운데)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정아가 친정팀 IBK기업은행에 비수를 꽂으며 도로공사에 첫 우승을 안겼다. 챔프전 MVP 박정아(가운데)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여자배구 도로공사가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선수단의 눈물이 하나로 모여 만든 빛나는 우승이었다.

여자 배구 첫 통합우승, MVP 박정아 #임명옥 모친상, 모두 ‘근조’ 달고 출전 #김종민 감독 “선수들 희생, 고마워”

도로공사는 27일 경기도 화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여자부 챔피언결정 3차전(5전3승제)에서 세트스코어 3-1(26-24 25-16 21-25 25-12)로 이겼다. 정규시즌 1위 도로공사는 챔프전에서 3연승을 거두고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준우승만 3번(2005, 05~06, 14~15) 차지한 도로공사의 첫 우승이었다. 최우수선수(MVP)는 기자단 투표 결과 29표 중 26표를 받은 공격수 박정아가 차지했다. 박정아는 챔프전 3경기 동안 70득점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까지 기업은행에서 뛰었던 박정아는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강타와 연타를 적절히 섞어 기업은행 선수들의 허를 찔렀다.

세트 우승을 차지한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과 리베로 임명옥이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트 우승을 차지한 도로공사 김종민 감독과 리베로 임명옥이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로공사 선수들은 눈물을 흘리다가 서로 얼싸안고 웃었다. 리베로 임명옥의 눈은 특히 촉촉했다. 임명옥은 챔프전 1차전을 이틀 앞둔 지난 19일 모친상을 당했다. 3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은 임명옥의 어머니는 긴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임명옥은 구단에 “조용히 챔프전을 치르고 싶다”고 말했고, 선수를 제외한 코칭스태프와 구단 직원들만 빈소를 찾았다. 21일 발인을 마치고 팀에 합류한 임명옥을 위해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을 비롯해 동료들은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달고 코트에 섰다.

임명옥은 챔프전 내내 일부러 밝은 표정을 지었다. 혹시나 자신의 일로 선수들 분위기에 악영향을 끼칠까봐서였다. 오히려 온몸을 날려 경기에만 집중했다. 도저히 잡아내지 못할 것 같은 공도 넘어지면서 받아냈다. 다른 선수들도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래서 경기가 끝났을 땐 모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세터 이효희는 “(임)명옥이 엄마께서 도와주신 것 같다”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MVP를 차지한 박정아는 “(임)명옥 언니에게 고맙다. 언니를 위해서 더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

도로공사 이바나가 공격을 하고 있다. [뉴스1]

도로공사 이바나가 공격을 하고 있다. [뉴스1]

배유나와 외국인선수 이바나도 고통을 참고 있다. 배유나는 시즌 개막전 대표팀에서 무릎을 다쳤다. 오른 무릎 슬개골이 탈골되면서 연골까지 상했다. 진통제 치료도 이따금 받지만 그는 “괜찮다”고 말한다. 지난해 FA(자유계약선수)로 이적한 뒤 팀이 최하위에 처졌던 만큼, 올해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다. 이바나의 어깨엔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팀의 주포로서 많은 공격을 때린 후유증이다. 김 감독은 “이바나가 책임감있게 잘 버텨줬다”고 했다. 레프트 공격수 문정원도 아픔을 버텨냈다. 공격 비중이 높은 라이트였던 그는 무릎 부상 이후 서브 리시브를 맡는 레프트로 변신했다. 비시즌 기간 김 감독의 혹독한 트레이닝에 눈물도 흘렸지만 그는 경기당 50~70개의 서브를 받아내는 든든한 방패로 변신했다.

한국도로공사 센터 정대영과 딸 김보민 양. [사진 정대영]

한국도로공사 센터 정대영과 딸 김보민 양. [사진 정대영]

센터 정대영은 엄마 선수로서 투혼을 발휘했다. 이날 블로킹 5개를 비롯해 19점을 올렸다. 정대영은 지난 2010년 프로배구 사상 처음으로 출산 휴가를 받고 딸 김보민(8) 양을 낳았다. 이후에도 코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간 정대영은 “항상 딸을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배구장에서 자란 딸은 “엄마처럼 배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런 딸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되기 위해 정대영은 이를 악물고 생애 최고의 챔프전을 치렀다.

사령탑인 김 감독도 지도자 생활 5년 만에 빛을 봤다. 2013년 남자부 대한항공 감독대행을 거쳐 사령탑에 오른 그는 3시즌 만에 팀을 떠났다. 주축 선수들이 빠진 가운데 3~4위를 유지했으나 프런트와 불화가 겹치면서 스스로 팀을 떠났다. 당시 대한항공 직원 신분이었던 그는 2016~17시즌을 앞두고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여자부 도로공사의 러브콜을 받아서였다. 과감한 도전에 나선 그는 지난해 꼴찌에 머물렀지만 2년 만에 팀을 정상에 올렸다. 김 감독은 “우승을 위해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불만을 터뜨리지 않고, 팀을 위해 희생했다. 또 코트에선 서로를 믿고 협력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김효경 기자, 화성=박소영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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