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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무대는 옛말 … 베트남 투자 지도가 바뀐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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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6호 14면

베트남 호찌민 현지 르포 

13일 베트남 호찌민시 최대 중심가인 1군에선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장 펜스 곳곳엔 일본 국기가 걸려 있다. 일본 자이카가 자금을 대고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공적개발원조 사업이다. [김경빈 기자]

13일 베트남 호찌민시 최대 중심가인 1군에선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장 펜스 곳곳엔 일본 국기가 걸려 있다. 일본 자이카가 자금을 대고 일본 기업이 참여하는 공적개발원조 사업이다. [김경빈 기자]

#1. 13일 오후 4시,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베트남 호찌민의 벤탄 시장. 의류·신발 등 2000여 개 상점이 모인 시장 앞 도로엔 수백대의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뒤엉켜 있다. 높다란 공사장 펜스가 도로 일부를 점령해 교통 체증이 더 심했다. 공사장 곳곳에 베트남과 일본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일본 국제협력기구(JICA)가 2012년 8월 공적개발원조(ODA)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고 일본 종합상사인 스미토모가 사업을 맡은 1호선 지하철 공사 현장이었다.

일본·중국 투자 확대 #일, 지난해 투자액 한국 앞서 1위 #중, 적대관계 잊고 10위권서 4위로 #한국 샌드위치 신세 #누적투자액 1위지만 제조업 70% #민영기업 M&A, 소비재 확대해야 #베트남 성장엔진 변화 #20·30대 ICT 기반 스타트업 열기 #1인당 창업 중국·인도보다 많아

#2. 올해 1월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가 보유한 징둥닷컴이 베트남 전자상거래 업체인 티키에 4400만 달러(약 471억원)를 투자했다. 2010년에 설립된 티키는 온라인 도서 판매를 시작으로 전자기기·패션·의류 등 사업을 넓혀 회원수 기준 업계 3위로 올라섰다. 이번 투자로 징둥이 티키의 최대주주가 됐다.

중국은 싫지만 거래는 한다

베트남 시장에 일본·중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자금이 몰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이 베트남 투자 1위 국가였다. 지난해 11월 기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1988년 이후 30년간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 누적액은 575억 달러(약 62조원)에 이른다. 뒤를 이어 일본(491억 달러), 싱가포르(418억 달러), 대만(308억 달러) 순이었다.

지난해만 따지면 순위가 바뀐다. 대규모 화력발전소 사업을 잇따라 따낸 일본이 89억 달러로 1위를 기록했다. 81억 달러인 한국은 2위로 밀렸고 싱가포르(46억9412만 달러)는 3위를 지켰다.

베트남 투자

베트남 투자

게다가 차이나머니(범중국 자본)가 게임체인지로 떠오를 태세다. FDI 기준 간신히 10위권에 들던 중국이 지난해 20억 달러를 투자하며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닛케이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지난해 ODA 방식으로 베트남에 2억5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낯선 광경이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반중 감정이 강한 곳이다. 동남아에서 차이나타운이 오래 유지되지 못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베트남에 중국 자본이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 호찌민에서 10년 넘게 사업을 한 이봉균 KJ대표는 “중국은 싫지만 거래는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라고 말했다.

일본·중국계 기업이 베트남을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수출입은행의 베트남 경제전문가 손승호 박사는 “인도차이나를 아우르는 전략적 위치, 젊은 인구, 중국보다 싼 임금 덕에 베트남은 포스트 차이나로 주목 받는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중국을 비롯해 캄보디아·라오스 등지와 인접해 아세안 시장의 수출입 관문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1억 명에 가까운 인구의 평균 연령은 29.9세로 40대에 접어든 한국에 비하면 젊고 활기차다.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235달러로 중국(744달러)이나 태국(447달러)보다 낮다. 김기찬 카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역시 “한국 정부도 일본처럼 민간업체와 손을 잡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체계적인 경제개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베트남 수출의 25% 차지

물론 그동안 베트남에서 거둔 한국 기업의 성과도 뛰어났다. 특히 삼성전자는 1995년 호찌민에 TV공장을 처음 세운 이후 20조원 이상을 투자하며 베트남 국민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와 계열사가 직접 고용한 인력만 16만 명에 이르고 지난해 베트남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했다. 응우옌(27세)씨는 “삼성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좋고 현지 기업보다 월급이 30%이상 높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은 삼성전자에서 일하고 싶어한다”고 들려줬다.

하지만 한국의 FDI는 공장 건설, 장비 투자 등 제조업 투자 비중이 70%다. 베트남의 싼 임금을 이용해 글로벌 생산기지를 만드는 데 주력한 것이다. 조종용 중소기업중앙회 베트남 사무소장은 “올해 베트남 최저임금이 평균 6.5%(1지역 기준 175달러) 올랐다”며 “인건비가 오르며 섬유·염색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인근 국가인 캄보디아나 미얀마 등지로 공장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주영 코트라 호찌민 무역관장 역시 “하루 빨리 생산기지 단계에서 벗어나 베트남 산업의 변화에 맞춰 소비재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력관리 어려움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해외 기업의 공장 건설이 늘면서 일자리가 늘고, 더 나은 조건이 있으면 이직하는 사례가 많다. 베트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기업 대표는 “이직률이 매년 20%에 달하고 사회주의 특성상 상명하복식 업무 지시가 파업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들려줬다. 전반적으로 법령 정비가 미비한 점도 기업들이 애를 먹는 부분이다. 부정부패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 재벌 빈그룹, 자동차 제조업 진출

베트남 경제의 또 다른 변화는 내부 성장엔진의 변화다. 응우옌쑤언푹 총리는 2016년 취임 이후 조선·자동차·석유화학·농업기계 등을 차기 주력산업으로 선정하고 제조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최대 부동산 재벌 빈그룹의 자동차 제조업 진출도 화제가 됐다. 베트남 정부는 최초의 국산차를 지원하기 위해 수출입 관세, 토지 임대세, 특별소비세 등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내놓았다.

전체 기업의 9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을 키우기 위해 스타트업에도 공을 들인다. 이달 15일 호찌민 시내의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사이공 이노베이션 허브(이하 SI허브)를 찾았다. 카페처럼 꾸며진 60㎡ 공간에 30여 명 청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응웬피반 SI허브 대표는 “제조업 기반이 약한 베트남에선 대학을 졸업했거나 유학을 다녀온 20·30대 들이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 창업으로 기술 개발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신생기업 수는 12만7000개에 이른다. 국민 1인당 스타트업 창업 수에서 중국이나 인도를 앞섰다.

이미 해외 기업들은 베트남 정책이나 산업 변화에 맞춰 에너지·유통·전자상거래·헬스케어 등 내수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손승호 박사는 “값싼 임금을 이용하는 단계를 넘어 민영화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내수시장을 노리는 적극적인 투자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수도 하노이
● 인구 9270만명
● 면적 33만966㎢ (한반도의 1.5배)
● 민족 구성 비엣족(85.7%), 타이족, 크메르족 등 54개
● 종교 불교(43.5%), 천주교(36.6%), 까오다이교(유교·불교·도교의 혼합종교) 등
● GDP 2159억 달러(1인당 GDP 2307달러)
● 소비자물가상승률 3.6%
● 실업률 2.4%

호찌민(베트남)=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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