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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남자 셋 여자 셋 인생 비·상·구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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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고. 그런데 문제지요. 그 일이 뭔지 모르겠으니 말입니다. 설령 꿈을 찾았다 한들 짐 싸서 훌쩍 떠날 수 있나요. 아이가 있고, 부모님이 계신데…. 그래서 우린 그냥 갑니다. '이 길이 아니야' 하면서도 멈추거나 돌아서지 못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매일이 어제와 같았습니다. 한데 왠지 몸이 일상에 착 달라붙지 않았습니다.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겉돌았습니다. 3월 어느 날, 결국 짐을 쌌습니다. 비슷한 고민에 빠진 다섯 남녀와 2박3일 합숙에 들어갔습니다. '10년 후 나'를 찾아 '맨땅에 헤딩'을 시작한 거지요.

글=이나리 기자 <windy@j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토요일.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양평의 한 펜션이었다. 한 인생 컨설팅사가 주관한 꿈 찾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여자 셋, 남자 셋. 나이도 이력도 다 다른 사람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금연(禁煙).금주(禁酒)하며 오래 가슴을 짓눌러온 해묵은 과제들과 정면 대결할 것이다. 포도단식도 할 예정이라 레몬과 거봉 포도, 야채 등을 부엌으로 나르는 것이 첫째 일이 됐다.

◆ 나를 온전히 털어놓다 - 첫째 날

먼저 레몬즙부터 한 컵씩 마셨다. 오후 2시. 아침부터 굶은 터라 시디신 레몬즙도 넘길 만했다. 한 시간에 한 잔씩 1.5ℓ 한 병을 다 마셔야 했다. 짧은 단식을 위한 일종의 워밍업이었다.

둘러앉아 처음 한 일은 '내 사연 말하기'. 비로소 알게 된 참가자들의 면면은 이랬다.

#김진철.48세.중소기업 관리이사="언젠가부터 '이렇게 살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그때그때 환경에 순응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마흔 넘어 가진 신앙이 큰 힘이 되고 있지만 문득문득 생애 마지막 모험을 떠나고 싶은 욕심을 가누기 힘드네요."

#김영훈.27세.'백수'="대기업 직원이었지만 늘 구조조정의 위기 속에 살았어요. 아들 쌍둥이가 태어나니 더럭 겁이 나데요. 궁리 끝에 투자 공부를 시작했죠. 노력한 덕분인지 제법 수익을 낼 수 있었어요. 3개월 전 회사가 명예퇴직을 받기에 그 돈 믿고 사표를 냈지요. 지금은 배터리를 방전하는 중이에요."

#박소정.27세.삼성화재 근무="제 업무가 교통사고 손해사정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고3 시절, 서울대에 다니던 오빠가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어요. 입도 닫혔죠. 전 졸지에 집안의 기둥이 됐고요. 대학 졸업 뒤 서둘러 취직했어요. 적성이니 뭐니 따질 여유가 없었죠. 이젠 제법 유능한 직장인이지만 마음은 종종 먼 데를 떠돌아요. 더 슬픈 건 하고 싶은 일이 뭔지조차 모른다는 거예요."

#김준호(가명).41세.중견기업 팀장="대기업 이벤트팀, 벤처 창업을 거쳐 지금 자리까지 왔어요. 평소 관심 있던 경영 혁신 업무를 맡아 나름대로 인정도 받고 있지만 이런 날이 오래 가리란 생각은 하지 않아요. 전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일이 참 즐겁거든요. 언제나 월급쟁이 생활에서 벗어나 내 꿈대로 살 수 있을까요."

#강미영.28세.다음커뮤니케이션 근무="부모님의 강권으로 고향 제주에서 대학을 나왔어요. 늘 대처가 그리웠죠. 졸업하던 해 가출하듯 서울로 가 웹 에이전시에 취직했어요. 회사가 어려워져 임용고시 준비도 해봤지만 잘 안 됐죠. 집에 돌아와 있다 지금 회사에 들어간 거예요. 의욕은 많고 아이디어도 넘치는데 방향을 못 잡겠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물론이고요."

듣다 보니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왕성한 독서욕, 자아 실현에 대한 강렬한 욕망, 꿈을 못 이루는 것보다 꿈이 뭔지도 모르는 게 더 괴로운 일이라는 자각. 함께 배고픔을 참으며 속 생각을 나누는 동안 우리 사이엔 어느새 깊은 친밀감이 번졌다.

*** 인생 2막 패스워드 꿈 2박3일 검색작전

◆ '우리'가 되어 '나'를 알아가다 - 둘째 날

전날 밤엔 오후 10시도 되기 전 잠자리에 들었다. 힘든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몹시 피곤했다. 단식으로 인한 일종의 명현현상(균형을 잃었던 몸이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상이 악화되거나 엉뚱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인 듯했다. 흡연자인 김준호씨가 가장 힘들어했다.

오늘은 본격적인 포도 단식의 날. 오전 8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거봉 포도를 10알씩 먹었다.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가 매일 먹고 배출하는 양이 엄청남을 절감했다.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발버둥쳐 온 삶'에 대해서도 각자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우리는 몇 가지 일을 더 했다. 각자 머리에 떠오르는 직업 15개씩을 적어 내놓고, 이어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는 직업 13개씩을 더 보탰다. 모두 168개. 그중 실현 가능성을 떠나 '마음을 건드리는 직업' 3개씩을 골랐다. 그리고 서로 겹쳐진 세 개의 원에 하나씩 적어 넣었다. <그래픽>

점심 무렵 심리상담가인 SMI코리아-드림빌더 유관웅 대표가 왔다. 참가자들은 일주일 전, 인터넷을 통해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테스트를 받은 터였다. MBTI는 카를 융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고안된 성격유형 검사. 유 대표는 사람당 A4용지 10~15장에 달하는 분석 내용을 근거로 개별 면담에 들어갔다.

대화를 마치고 나온 이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누군가는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을 털어버리지 않고는 독선적 인간이 되고 말 것"이란 섬뜩한 얘길 들었다. 또 다른 이에겐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을 평생 억누르며 살아왔다. 이젠 그만 자신을 놓아 주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애써 덮어놓은 상처를 들쑤시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도려내지 않고서 어찌 치유를 바라겠는가.

오후 7시. 본격적인 '꿈 발표회'가 시작됐다. 김진철씨는 "어부가 돼 선교 활동을 하며 글도 쓰고 싶다"고 했다. 첫 인상대로라면 우리는 그의 선택에 문제가 있다고 했을 것이다. 소심하고 무뚝뚝한 데다 갈 데 없는 책상물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매우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이미 시집 두 권을 자비출판했고, 기독교 신자로서 초심자 그룹을 이끄는 멘토 역할 또한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생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느냐, 이왕 어부를 할 거면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동남아 지역에 가보라"는 제안을 했다. 원활한 집필 활동을 위해 정식 등단 절차를 밟고, 육체노동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기르며, 여름휴가 중 가족들과 이주 예상지를 돌아보라는 조언도 했다.

김영훈씨는 "'행복 투자클럽' 운영자이자 재무설계사가 될 것"이라 했다. 투자자들이 맘 편히 들러 정보도 얻고 차도 마실 수 있는 '행복 투자카페'도 운영하고 싶다 했다. 김준호씨는 '미래경영 전문가'란 직함을 내놓았다. '상상력발전소장'이란 것도 있었다. "개인과 조직의 미래를 아름답게 디자인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갈고닦은 경영혁신 노하우와 글솜씨를 바탕 삼아 경영우화집을 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말했다.

'프렌드 메이커'가 되겠다고 나선 강미영씨는 "가만 생각해 보니 내 바람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주는 것"이라 했다. 직장 다니는 틈틈이 바텐더 교육을 받고 돈도 열심히 모아 언젠가 친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카페를 열리라 다짐했다. '추억 관리'를 화두로 한 새 비즈니스 모델 창출에도 관심이 컸다.

박소정씨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고른 세 직업엔 연관성이 없었다. "커피숍 주인이 그중 가장 현실적인 것 같다"며 영 자신 없어 했다. 누군가 말했다. "소정씨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힘드니 무조건 쉴 수 있는 곳,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찾는 것 같아. 그러지 말고 강한 리더십과 철저한 일처리 솜씨를 살려 보는 쪽으로 다시 고민해 보면 어때요?"

박소정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손해사정 업무의 전문성을 살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의논했다. 그는 "눈앞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라 했다. 누군가 "강미영씨와 박소정씨는 아직 20대"라며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고, 그 혼란으로 인해 두 사람의 10년 뒤는 또래 그 누구의 그것보다 안정적일 것"이라고 다정히 토닥였다.

◆ 10년 전의 나 10년 뒤의 나 견주어 보다 - 셋째 날

아침에 잡곡밥을 했다. 죽염으로 살짝 간한 야채 전골과 함께였는데 도무지 먹히지가 않았다. 과일로만 살살 달래놓은 배 속이 곡기를 거부하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둘러앉아 어젯밤 숙제 삼아 써놓은 글들을 발표했다. 이름하여 '10대 풍광-미래에 대한 회고'. 2016년의 내가 돼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2006년 이후 매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를 10개의 장면으로 축약해 보여 주었다.

글 속에서 다섯 명의 남녀는 한껏 자유로웠다. 아름답고 자신감에 넘쳤다. 누군가는 "베트남 바닷가 2층 집에서 새벽 기도를 마친 뒤 산책을 하고", 누군가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 줄 성공박물관을 개장"하며, 다른 이는 "한국인의 놀이 문화에 대한 책을 완성"했고, 또 다른 이는 "비즈니스 역량을 한껏 살려 굴지의 커피전문점 체인을 이끌고" 있었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감자.고구마로 점심식사를 했다. 어느새 우리는 십년지기처럼 가까운 사이가 돼 있었다. 어떤 질투도 콤플렉스도 없는, 순진하고 신뢰로 가득한 우정. 그러니 그냥 흩어질 수 있는가. 우리는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은 '참깨'라 정했다. '참으로 깨어라, 참답게 깨어라, 열려라 참깨!' 서로의 꿈이 활짝 열리기를, 늘 처음처럼 따뜻하기를, 돌아보면 행복한 10년이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 나의 꿈 찾으려면

1 느낌 좋은 일인가를 따져 본다

→ 능력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는 건 차선이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다.

2 직업관부터 세운다

→ 어떤 이에겐 가족의 행복이, 어떤 이에겐 안정된 생활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의 직업관이 뭔지부터 고민한다.

3 그간의 경험을 고려한다

→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포함해 구체적 일람표를 짜 본다.

4 재능과 기질을 파악한다

→ MBTI 외에 에니어그램.에고그램 등의 성격유형 검사가 있다. 기초 검사는 인터넷으로도 쉽게 받을 수 있다.

5 직업의 명칭.컨셉트를 정한다

→ "직업은 찾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 했다. 정교한 계획을 짜 철저히 실천한다면 공상은 곧 현실이 된다.

6 사는 법 배우는 데 투자한다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02-391-9709)의 '내 꿈의 첫 페이지' 같은 소규모 합숙 프로그램 외에도 '두 잇 아바타 센터'(02-549-9932), LMI코리아(02-2202-8700), SMI코리아(02-388-8001) 등에서 세계적으로 공인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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