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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근무시간 줄면 일자리 는다더니 … 꼼수만 작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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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최현주 산업부 기자

최현주 산업부 기자

‘날라야 할 100개의 상자가 있다. 그간 10명이 1시간 동안 각각 10개씩 옮겼다. 그런데 앞으로는 30분 만에 상자를 모두 옮기라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10명이 늘어난 20명이 30분 동안 각각 5개의 상자를 나르면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전히 10명이 줄어든 시간 안에 100개의 상자를 나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7월 ‘최대 주 52시간’ 단축근무 시행을 앞둔 요즘 직장인이 처한 상황이 딱 이렇다. 정부는 근무시간을 줄이면 자연스레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시장은 그리 간단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아직 단축 근무 때문에 고용을 늘리겠다는 기업은 보지 못했다.

대신 다들 생산성 높이기에 주력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직원 쥐어짜기’다. 당연히 단축근무 시행을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직장인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정부의 방침을 따라야 하니 반강제적으로 퇴근을 종용한다. 공식 퇴근 시간이면 PC 전원을 차단하고, 사무실 내 조명도 꺼버린다. 집에 가라는 의미다. 그런데 직원 입장에선 해야 할 일이 있다. 결국 집으로 일감을 싸 들고 가거나 어두운 회사에서 개인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한다.

출입카드로 근태를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은 일단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를 나선다. 그리고 다시 보안 직원 등의 카드로 문을 열고 회사로 돌아와서 일한다.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제법 짭짤했던 추가 근무 수당도 못 받는다. 공식적으로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 출근에 대한 압박이 생겼다는 얘기도 들린다. 퇴근 시간에만 촉각을 곤두세운 탓에 출근 시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전 7시에 출근해도 공식 출근 시간인 오전 9시까지 2시간은 ‘업무준비시간’으로 간주하고 근로시간에 포함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야근 대신 조근이 생길 판이다. 점심시간에도 일하게 되고, 근무시간에 화장실 가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커피를 줄였다는 토로도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연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이로 인한 문제점은 셀 수 없이 많다. 근로시간 단축은 꼭 필요한 처방일 수 있다. 하지만 ‘퇴근이 진짜 퇴근’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상세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자칫 늘라는 일자리는 안 늘고 ‘꼼수’만 늘 수 있다.

최현주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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