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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의혹 하일지 교수직 사퇴 “피해자는 나, 사과 강요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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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자신의 성희롱·성추행 의혹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일지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자신의 성희롱·성추행 의혹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처음부터 끝까지 ‘사과’는 없고 불통만이 남았다.

소속학과 학생들 “제자 거부” 성명 #대학 측 “교내 성폭력 상담실 운영”

“학생들이 너무 어려서, 철이 없어서 잘 모르는 겁니다.”

하일지(63)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말이 끝나자 수백 명의 학생은 야유와 한숨을 쏟아냈다. 19일 오후 2시부터 50분간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하 교수는 자신의 성희롱·성추행 의혹을 모두 반박한 뒤 “문학자로서 깊은 상처를 입었다. 내 소신을 지키고자 강단을 떠나 작가로 되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발언을 한 건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는 나다” “사과를 강요하지 말라”고 응수했다.

하 교수의 기자회견이 있고 3시간 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재학생·휴학생 147명이 성명을 냈다.

“침묵해야만 제자가 될 수 있는 거라면 우리는 당신의 제자가 아니다. 우리는 당신의 제자이기를 거부한다. 당신이 아니어도 우리는 우리의 문학을 써 나갈 것이다.”

학교 본관 앞에서 13학번 이신후씨가 대표로 성명서를 낭독했다. 총학생회도 “대학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자리 잡고 있어 우리가 외치는 미투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근 동덕여대에서는 하 교수 관련 ‘미투’가 알려지면서 교내 성폭력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됐다. 학생들 말에 따르면 하 교수는 지난 14일 수업시간에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대해 “점순이가 남주인공을 강간한 것이다. 남자애가 미투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 김지은씨에 대해서는 “처녀가 아닌 이혼녀라 진정성이 의심된다. 이혼녀는 욕망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후 하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재학생의 글도 올라왔다.

이에 학생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그는 오히려 “20년간 한 번도 말이 없었는데 미투 때문에 올해 유독 난리다. 생각의 자유와 강의실 내 학습권을 침해당했다”며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례하고도 비이성적인 결과를 받았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했던 발언들은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 교수는 성추행 피해 학생이 과거 자신에게 보낸 안부메일을 증거자료로 배포했다. 그러나 피해 학생 측은 “정상적으로 학교에 복학하고 졸업하기 위해 메일을 보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고 반박했다.

동덕여대 관계자는 “하 교수가 오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며 “교내에 성폭력상담실을 운영하는 등 성폭력 사안마다 발 빠르게 대처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사직서 수리를 보류하고 하 교수의 교수권을 영구 박탈하라고 촉구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적극적인 가해자 처벌은 물론 학생 인권을 보호할 인권센터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성폭력 ‘미투’로 교수들 줄사퇴=19일 한국외대에서는 국내 ‘중동 전문가’로 손꼽히던 A교수가 성추행 의혹에 휩싸이자 교수직을 내려놨다. 이날 새벽 ‘한국외국어대학교 대나무숲’에는 A교수가 밥을 사 주겠다고 불러 “모텔에 가자”고 했고, 입을 맞추려 하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A교수는 입장문을 통해 “성숙하지 못한 언행으로 제보자의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입힌 것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교수직을 포함한 모든 직책에서 사퇴하고 반성하는 삶을 살겠다”고 밝혔다. 미투를 통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배우 김태훈(52)씨 역시 교수로 재직 중이던 세종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홍상지·김정연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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