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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이기주의가 부른 재앙…섬진강에 재첩이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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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는 섬진강…하얀 모래밭도, 재첩도 사라졌다 

"과거엔 하얀 백사장만 있었는데 7~8년 전부터 모래톱에 풀과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고, 이제는 아예 숲처럼 돼 버렸어."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서 상류로 25㎞ 올라온 경남 하동군 하동읍 두곡리 섬진강 변.
강변에 드넓게 펼쳐진 모래톱에는 잡초가 무릎 높이 만큼 자랐고, 5~6m 높이까지 자란 나무도 많았다.

하얀 모래 대신에 풀과 나무가 자란 섬진강 모래톱을 가리키는 김용우 섬진강 어민회 대표. 강찬수 기자

하얀 모래 대신에 풀과 나무가 자란 섬진강 모래톱을 가리키는 김용우 섬진강 어민회 대표. 강찬수 기자

지난 12일 섬진강 어민회 김용우(78) 대표는 "상류에서 내려오는 강물이 줄면서 한번 쌓인 모래가 씻겨내려 가지 않기 때문에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것"이라고 말했다.
하동군 등에 따르면 11곳이나 되는 모래톱의 면적은 넓이 2㎢(축구장 280개)가 넘는다.
김 대표는 "강물이 적게 내려오는 대신 바닷물이 올라오면서 재첩 생산량이 크게 줄었다"고 덧붙였다.

재첩은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기수역에서 자란다. 취재에 동행한 신동인 영산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은 "하동읍 인근 섬진강의 염분 농도는 12 psu(practical salinity unit, 실용 염분 단위)로 재첩 서식 조건인 3.5~10.5 psu를 웃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01년 하동군에서 생산된 재첩은 626 t이었는데, 2016년에는 3분의 1 수준인 202 t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가뭄이 심해 재첩 생산량이 더 줄었다는 게 어민들 주장이다.

섬진강 하류 모래톱. 최근 내린 비로 유량이 다소 늘어났지만 모래톱은 육지화됐다. 강찬수 기자

섬진강 하류 모래톱. 최근 내린 비로 유량이 다소 늘어났지만 모래톱은 육지화됐다. 강찬수 기자

섬진강 유량이 줄어든 것은 하구에서부터 30㎞ 정도 올라간 곳에 있는 한국수자원공사의 다압취수장 때문이다.
갈수기에 상류에서 내려오는 물은 하루 40만㎥로 줄어드는데, 광양시 다압면의 다압취수장에서는 하루 39만7000㎥까지도 취수한다. 이 물은 수어댐을 거쳐 광양시·광양제철·여천공단 등으로 간다.
다압취수장은 지금의 위치보다 하류 쪽으로 7~8㎞ 떨어져 있었는데, 2002년 상류로 이전했다. 바닷물이 올라오면서 취수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상류로 옮긴 뒤 취수량도 크게 늘렸다.
다압취수장에서는갈수기에는 바닷물 영향이 덜한 간조 시간에만 취수한다는 게 어민들 주장이다.
다압취수장 외에도 상류 댐에서 물을 취수해 섬진강 유역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도 물 부족 원인이다. 섬진강 지류인 보성강의 보성강댐에서는 하루 20만㎥를 수력발전에 활용한 뒤 남해 득량만으로 보낸다. 주암댐과 동복댐에서는 각각 하루 40만㎥, 30만㎥를 취수해 영산강 수계인 광주·목포·나주로 보낸다.

섬진강의 물 이용 현황 [자료 중앙일보]

섬진강의 물 이용 현황 [자료 중앙일보]

주암댐에서 취수한 물은 또 도수터널과 상사호를 거쳐 여수까지 가기도 한다.
특히 섬진강댐에서는 연간 3억7000만㎥를 취수해서 동진강으로 보내 김제평야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그중 일부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칠보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데 활용한다. 섬진강댐에서 섬진강 하류로 보내는 물은 하루 8만6000㎥에 불과하다.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섬진강댐. 댐에서 내려보내는 물은 소수력발전에 사용하는 초당 1톤이 전부다. 강찬수 기자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섬진강댐. 댐에서 내려보내는 물은 소수력발전에 사용하는 초당 1톤이 전부다. 강찬수 기자

한국수자원공사 섬진강지사 관계자는 "2015년 말에 섬진강댐 재개발사업이 끝나 섬진강 하류로 하루 17만8000㎥(연간 6500만㎥)의 물을 내려보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지만, 한국농어촌공사나 한국수력원자력 측과의 소송이 끝나지 않아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한수원과 농어촌공사는 댐사용권을 각각 69.2%와 30.8% 비율로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재개발사업 이후 각각  26.8%과 15.1%로 줄어들고, 대신 수자원공사가 20.6%, 국가가 37.5%의 댐 사용권을 갖게 된 것에 반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제평야에 사용할 농업용수를 취수하는 섬진강댐의 운암취수구. 강찬수 기자

김제평야에 사용할 농업용수를 취수하는 섬진강댐의 운암취수구. 강찬수 기자

섬진강댐의 물을 끌어다가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칠보수력발전소. 발전에 사용한 물은 동진강을 거쳐 김제평야의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강찬수 기자

섬진강댐의 물을 끌어다가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칠보수력발전소. 발전에 사용한 물은 동진강을 거쳐 김제평야의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강찬수 기자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댐 사용권 비율이 줄면 자칫 용수 사용량도 전보다 줄어들 수도 있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댐 재개발로 용수 공급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재개발사업으로 댐의 수위를 전보다 높게 유지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물이 들어와야만 저수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수자원공사 측은 소송이 끝나야 물을 추가로 내려보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이어서 하류의 광양·하동 어민들은 지난해 5월과 7월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어민들은 ▶섬진강댐 방류량 확대 ▶하천 유지 유량 측정지점 변경(전남 구례군 토지면 송정에서 하류인 광양시 다압면으로 이전) ▶섬진강 하류에 염분 측정기 설치 등을 요구했다.
영호남 섬진강 염해피해대책위원회 조영주(49) 위원장은 "섬진강은 영·호남 경계에 있다 보니 양쪽 지자체도 별로 관심이 없고, 중앙 정부도 신경을 쓰지 않는 임자 없는 강 신세"라며 "섬진강 수계 전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콘트롤 타워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섬진강 하구에서 염해 피해가 나타난 것은 10년도 넘었지만, 환경부와 국토교통부는 "염분이 든 바닷물"이라며 관심이 없었다. 해양수산부는 "바다가 아닌 강"이라며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병옥 영산강유역환경청장은 "섬진강 수계의 댐과 취수장 등 설치기관이 달라 종합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수질·수량 등 각 부처로 나뉘어져 있는 물 관리 업무 일원화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조 청장은 "섬진강 염해 피해 등과 관련해 5월부터 환경영향조사를 착수할 수 있도록 영산강홍수통제소와 수자원공사 등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병옥 영산강유역환경청장 인터뷰

조병옥 영산강유역환경청장. 강찬수 기자

조병옥 영산강유역환경청장. 강찬수 기자

전남 광양시와 경남 하동군 등 섬진강 지역 어민들은 20년 넘게 염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바닷물이 상류로 올라오면서 섬진강의 재첩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만난 조병옥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장은 "영산강 염해 피해를 보면서 정부의 물 관리 업무 일원화가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섬진강 지역 염해 피해의 원인은 무엇인가.

"섬진강은 상류에 설치된 댐과 취수장에서 물을 취수해 유역 변경 방식으로 수계 외 지역에 필요한 용수를 공급하고 있어서 하천 유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강바닥 골재 채취나 광양만 개발도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광양제철소와 컨테이너 부두, 산업단지 확장 등으로 매립이 진행되면서 밀물 때 바닷물이 섬진강으로 더 많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섬진강 지역 피해 실태에 대한 조사는 이뤄진 적이 있나.

"2009년 한국수자원공사 측에서 종합적인 생태 조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무산됐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조사에 따르면 하구를 기점으로 약 16㎞까지 바다로 바뀌었고, 광양시 다압취수장 1.5㎞ 하류인 24㎞까지도 염분이 검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

환경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김은경 환경부 장관도 최근 섬진강 하류 지역 어민들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관련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영산강과 섬진강 수계 전체의 물 이용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염해 피해 뿐만 아니라 수량과 수질 문제의 핵심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현재 섬진강 염해 피해 대책협의회를 구성해 피해 어민들과 협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협의체에서는 어떤 논의를 진행하고 있나.

"영산강유역환경청과 영산강홍수통제소, 한국수자원공사 등 3개 기관 공동으로 재원을 마련해 환경영향조사를 추진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구례 송정지점 하천 유지 유량을 높이는 쪽으로 고시하는 등 섬진강 방류량을 증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조병옥 영산강 유역환경청장. 강찬수 기자

조병옥 영산강 유역환경청장. 강찬수 기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물 관리 업무 일원화가 필요하지 않은가.

"우리나라 물 관리는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등 5개 부처가 나눠 수행하고 있다. 각 부처는 각각의 물 관리 목표에 따라 관리하게 돼 종합적인 관리가 어렵다. 특히, 인간 중심의 물 이용과 하천 관리로 생태계의 단절 같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통합 물 관리가 되면 수질 오염을 막고 하천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확보된 물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논의하게 된다. 유역의 물 이용 등과 관련한 의사 결정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수도 있다. 유역 거버넌스 구축이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다. 하천을 그 하천을 품고 사는 주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게 된다."

물 관리 일원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통합 물 관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물 관리를 일원화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토교통부 수자원국과 수자원공사가 담당하는 수량 관리 기능과 조직을 환경부로 통합하는 내용이다. 지난달 임시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예상됐으나,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처리되지 못했다."

하동·정읍=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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