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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커뮤니티 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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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미국 다트머스대 의대 교수들은 특성이 있다. ‘과잉진단’에 대한 예민한 문제의식이다. 엘리엇 피셔 교수는 2003년 논문에서 “의료비 지출이 많을수록 건강은 더 나빠진다”고 주장했다. 과잉진단과 과잉치료로 인한 부작용을 이유로 들었다. 『과잉진단』이란 저서가 한글로 번역된 길버트 웰치 교수는 이 분야 선구자로 꼽힌다. 2010년 미국 암협회지에 그의 논문 ‘암 과잉진단’이 실린 뒤 세계 의학계에서 의료 과잉을 자성하는 목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2013년 결성된 미국 과잉진단예방학회가 다트머스대 의대 교수들 주축인 건 그래서다.

이들의 집중포화를 비켜 가지 못한 게 발생률 세계 1위란 오명을 가진 한국의 갑상샘암이다. 웰치 교수가 학회 결성 이듬해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국에서 유행병처럼 증가하고 있는 갑상샘암은 환경독소나 병원균에 의한 게 아니라 과잉진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골자다. “명백히 위험한 병을 간과하는 것과 대수롭지 않은 것을 야단스럽게 찾아내는 것은 다르다”는 훈수까지 뒀다. 히포크라테스 때부터 견지된 “환자를 돕되 해를 끼치지 마라(Help or Do not harm)”는 의학 원칙과 겹쳐지는 대목이다.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게 최고 경지의 의술이란 얘기다.

그런데 한국 의료 현실은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갑상샘암만이 아니라 총체적 의료 과잉 상태다. 넘치는 첨단 장비·시설도 이를 부추긴다. 오죽하면 요즘 병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까 싶다. 특히 노인들이 ‘의료 천국’에 갇혀 과잉진단과 과잉치료를 받는다는 우려가 크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 결과만 봐도 그렇다. 노인들이 가는 요양병원이 최근 6년간 연평균 7.6% 늘었다. 인구 대비 요양병원 병상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그마치 7배다. MRI 장비도 OECD의 2배 수준이다. 집에서 통원 치료해도 될 노인이 요양병원에 들어갔다가 병이 번져 사망하기도 한다. ‘사회적 고려장’이란 안타까운 지적이 나오는 판이다.

복지부가 엊그제 도입 계획을 밝힌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노인이 병원·시설 대신 집이나 그룹홈에 머물면서 지역사회의 돌봄을 받는 것이다. 7월께 로드맵을 내놓고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데 정교한 설계와 인프라 구축이 관건일 듯싶다. 준비 안 된 노후를 걱정하는 50대 이상이 세 명 중 한 명꼴이라고 한다. ‘사회적 돌봄’인 커뮤니티 케어가 안착해야 하는 이유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