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8월 서울대 구내에 대자보 한장이 붙었다. 서울대 화학과 실험실 조교 우 모 씨가 신 모 교수로부터 부당한 신체접촉을 당했다는 폭로였다. 신 교수는 강력부인했다. 1년 계약직인 우 씨를 재계약에서 탈락시키자 앙심을 품고 보복하는 것이라 했다. 논란은 법정싸움으로 번졌다. ‘직장 내 성희롱’을 소재로 한 첫 번째 사건을 세상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이라 불렀다. 공방은 무려 6년간 이어졌다. 마침내 법원이 1999년 우 조교의 손을 들어줬다. 신 교수에겐 5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내라고 했다. 당시 법원이 성희롱으로 인정한 행위다.
실험실 기기조작 시 어깨, 등, 손을 무수히 접촉 “요즘 누가 시골 처녀처럼 그렇게 머리를 땋고 다니느냐”면서 머리를 만짐 단둘이서 ‘(실험실)입방식’을 하자고 제의. 여기에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몸매를 감상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 것까지 성희롱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제 ‘엉큼한 마음’을 먹는 것조차 허락지 않도록 세상이 변하는 듯했으나… 미투(#Me Too)폭로를 보면 겉만 변했다. 당시 우 조교사건의 변호인 중 한명이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박 시장은 ‘권양사건’이라고도 불린 부천서 성고문사건도 변호했다. 미투에 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지난 11일 박 시장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우 조교 사건 때…”라고 얘기를 꺼냈다. 가벼운 ‘핀잔’이 돌아왔다. 뭐든 피해자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 조교 사건이 아니라 신 교수 사건이라고 해야지요. 저도 어디서 그렇게 얘기했더니 여성단체들이 딱 시정시켜주더라고요.” 그는 ‘젠더적 감수성’에 대한 이해를 특히 당부했다. “그럴 때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인간적이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세상이 될 수 있다”면서.
얘기가 산으로 가는 것인진 몰라도 신 교수 사건으로 돌아가면, 서울대 재계약에서 탈락한 우 조교는 다른 학교에도 취업하지 못했다. 끝내 사회활동을 접은 그는 6년의 소송에서 이긴 걸까 진 걸까. 미투는 권력문제다. 미투 피해자들은 각기 검찰, 정당, 문단, 극단, 실험실 내 권력자들에게 상처를 입었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이란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권력은 속성상 괴물이다.
권력이란 괴물은 우리에 갇혀있을 놈이 아니다. 어떻게든 우리 밖으로 나와 약자에게 상처를 주려 한다. 신 교수 사건이 미투 운동의 미래가 되지 않으려면 ‘나도’, ‘나도’라는 목소리가 연대(連帶)해 우리를 더 튼튼히 하는 수밖에 없다.
강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