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강원도 정선의 정선알파인경기장.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 사이로 눈에 띄는 플래카드가 있었다. 플래카드엔 '너에게 항상 승리를 주리'라는 문구가 씌어있었고, 응원하는 선수의 얼굴도 그려져 있었다.
이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을 하던 사람은 이날 경기에 출전한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박항승(31)의 아내 권주리(31) 씨였다. 비록 박항승은 이날 두 차례 레이스 중 1차 시기에선 실격, 2차 시기에선 22명 중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권 씨는 "다음이 있으니까 괜찮다"면서 남편을 다독였다.
박항승과 아내의 스토리는 패럴림픽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박항승은 4살 때 교통사고로 오른팔과 오른다리를 잃었지만 늘 긍정적인 자세로 삶을 살았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팅을 통해 연극배우였던 권 씨를 2012년 처음 만났다. 장애가 있는 건 권 씨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2년여 동안 친구 사이로 지내다 연인 사이로 발전한 둘은 2015년 결혼했다. 둘은 이름 뒷글자를 따 '승리 커플'로도 불렸다.
박항승이 스노보드를 타게 된 것도 아내 권 씨 덕분이었다. 스노보드광이었던 권 씨를 따라 스노보드를 탄 박항승은 아예 특수학교 교사를 그만 두고 2015년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해 1년 뒤 국가대표까지 뽑혔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상지 장애 선수 중에 유일하게 의족을 하고 경기에 나선 박항승은 하루 8~9시간씩 보드를 타고, 체력 훈련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대회를 철저하게 준비했다. 그리고 패럴림픽에도 출전하는 꿈을 이뤘다.
"메달을 못 따도 이미 당신은 금메달"이라던 아내 권 씨를 보고 환하게 웃은 박항승은 "아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금메달이다. 내 주종목에서 꼭 메달을 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며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그는 16일 자신의 주종목인 뱅크드 슬라롬(기문 코스를 회전하며 내려오는 경기)에 출전한다.
정선=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