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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나를 여전히 사랑해? 그럼 돈 좀 보내줘”-쿠바의 인터넷 혁명 현장 취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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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무덤이 있는 산타클라라의 중심부에 있는 비달 광장은 인터넷이 연결되는 와아파이 공원이었다. 이메일 송수신이나 구글 검색을 하는 사람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옆에 공산당의 선전 간판이 보인다. 게바라 묘지에서 열린 행사에서 군 총사령관인 피델 카스트로가 했던 "젊은이들은 좌절해선 안된다"는 말이 적혀 있다.

체 게바라의 무덤이 있는 산타클라라의 중심부에 있는 비달 광장은 인터넷이 연결되는 와아파이 공원이었다. 이메일 송수신이나 구글 검색을 하는 사람이 벤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옆에 공산당의 선전 간판이 보인다. 게바라 묘지에서 열린 행사에서 군 총사령관인 피델 카스트로가 했던 "젊은이들은 좌절해선 안된다"는 말이 적혀 있다.

프라이버시 없이 공원에서 인터넷 국제통화

“엄마, 사랑해. 잘 지내지? 그런데 식당 차리게 돈 좀 보내줄 수 있어?”
“자기, 너무너무 보고 싶어, 여전히 나 사랑하지? 그렇다고. 그럼 언제 미국에 데려갈 거야? 우선 집세 내게 송금이나 좀 해줘.”
지난 2월 초 쿠바를 방문했을 때 인터넷에 연결되는 아바나 공원의 핫스폿 공원(Hot spot park)에서 이뤄지고 있던 국제 통화 내용의 일부다. 이런 내용을 통역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모바일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외에 사는 가족이나 연인과 통화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부러 엿들으려고 한 게 아닌데도 이런 사적인 통화 내용을 공원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유는 쿠바의 인터넷 시스템 때문이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쿠바 와아파이 공원은 대개 공원이나 광장, 호텔 호비였다. 그곳에는 해외 가족과 화상 통화를 하는 사람이나 이메일 송수신, 구글 검색을 하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쿠바 와아파이 공원은 대개 공원이나 광장, 호텔 호비였다. 그곳에는 해외 가족과 화상 통화를 하는 사람이나 이메일 송수신, 구글 검색을 하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쿠바는 국영 통신사가 파는 1시간짜리 인터넷 카드를 사서 12자리로 이뤄진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일일이 쳐야 연결된다. 그것도 대부분 공원, 광장, 호텔 로비인 공공장소에서만 연결이 가능하다.

쿠바는 국영 통신사가 파는 1시간짜리 인터넷 카드를 사서 12자리로 이뤄진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일일이 쳐야 연결된다. 그것도 대부분 공원, 광장, 호텔 로비인 공공장소에서만 연결이 가능하다.

1시간짜리 유료 카드 사야 인터넷 연결 가능  

지난 2월초 찾았던 쿠바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의 하나가 인터넷 연결이었다. 쿠바는 인터넷 접근이 제한된 나라로 분류된다. 한 마디로 쿠바에선 무료 와이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인터넷은 유료였다. 쿠바 인터넷 연결 방식은 독특했다. 가정이나 일터에서 와이파이나 유선 케이블망을 통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국민의 5%에 불과하다. 나머지 인터넷 연결은 국영 통신사인 에텍사(Etecsa)의 무선 서비스인 나우타(Nauta)가 독점한다. 2015년 시작된 나우타의 인터넷 서비스는 호텔 로비나 공원, 광장 같은 일부 공공장소에 존재하는 핫스팟 공원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 모두 유료다. 이를 이용하려면 1시간씩 이용할 수 있는 나우타 와이파이 카드를 사야 한다.

쿠바 인터넷 공원 표시.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은 와이파이 표시지만 쿠바에선 이를 발견하면 여간 반갑지 않았다. 아직 숫자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쿠바 인터넷 공원 표시.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은 와이파이 표시지만 쿠바에선 이를 발견하면 여간 반갑지 않았다. 아직 숫자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와이파이 인터넷 이용자가 핫스팟 공원에서 스마트폰의 와이파이 네트워크를 켜면 에텍사의 나우타 시스템이 뜬다. 이어서 나우타 와이파이 카드에 적힌 접속번호 12자리와 은박을 긁어내면 보이는 비밀번호 12자리를 각각 입력하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자동 연결 와이파이는 쿠바에 없다.

쿠바 인터넷 속도는 최고 192Mbps에 이르렀다. 비수기를 제외하곤 외국인 전용인 바라데로 국영 리조트에서의 속도였다. 이 역시 호텔 로비에서만 연결이 될뿐 객실에선 인터넷이 불가능했다.

쿠바 인터넷 속도는 최고 192Mbps에 이르렀다. 비수기를 제외하곤 외국인 전용인 바라데로 국영 리조트에서의 속도였다. 이 역시 호텔 로비에서만 연결이 될뿐 객실에선 인터넷이 불가능했다.

속도 빨라지고 중국에선 안 되는 구글도 연결돼  

속도도 의외로 빨랐다. 아바나 중심지의 국영 호텔 로비에선 52Mbps로 느렸지만 사실상 외국인 전용인 바라데로 국영 리조트의 핫스팟 공원에선 속도가 192Mbps에 이르렀다. 하지만 핫스팟 공원은 범위가 좁아 예로 호텔도 로비에서만 연결이 순조로울 뿐 객실에선 연결이 힘들었다. 가끔 속도가 확 느려지거나 아예 몇 시간씩 연결이 끊기기도 했다.
쿠바 국민은 핫스폿 공원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해외 친지와 국제통화는 물론 영상통화까지 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나 태블릿, 노트북을 든 사람들이 몰려있으면 그곳은 영락없이 핫스폿 공원이었다. 핫스폿 공원에선 이메일 송수신, 인터넷 검색도 가능했다. 중국에선 접속이 불가능한 구글 서비스도 생생 돌아갔다. 구글이 2016년 쿠바 국민이 자사의 콘텐트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아바나 당국과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물론 메신저와 무료 인터넷 전화 애플리케이션인 왓츠앱도 가능했다. 다만 세계 최대 인터넷 전화인 스카이프, 수신인이 내용을 확인하면 사라지는 단문 서비스인 스냅챗 등 몇 가지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쿠바 반체제 활동과 관련한 내용도 검색이 되지 않았다.

쿠바 아바나 시내의 국영호텔 로비에선 인터넷 속도가 52Mbps였다. 그나마 하루는 종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1시간짜리 인터넷 카드를 로비에서 미화 3달러가 넘는 3쿡에 팔았다. 지방 리조트로 가자 이 가격은 1~2쿡으로 떨어졌다. 쿠바인의 1~3일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쿠바 아바나 시내의 국영호텔 로비에선 인터넷 속도가 52Mbps였다. 그나마 하루는 종일 연결이 되지 않았다. 1시간짜리 인터넷 카드를 로비에서 미화 3달러가 넘는 3쿡에 팔았다. 지방 리조트로 가자 이 가격은 1~2쿡으로 떨어졌다. 쿠바인의 1~3일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인터넷 카드 1시간에 반 달치 월급으로 시작, 지금은 1~3일치 일당 수준…여전히 부담

문제는 나우타 인터넷 카드 구입이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는 점이다. 외국인들은 국영 호텔이나 리조트의 카운터에서 구입할 수 있었지만, 물건이 떨어진 경우도 왕왕 있었다. 쿠바 국민은 에텍사 서비스센터에서 긴 줄을 서서 사야 한다. 핫스폿 공원에는 웃돈을 붙여 카드를 파는 상인들도 보였다.

‘와이파이 공원’은 모바일 사용자로 북적 #1시간 요금, 반달 월급→하루 일당까지 인하 #인터넷 확산하며 광속 변화 겪는 쿠바 사회 #인터넷, 해외 친지 송금과 불만 배설 창구로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2015년 무려 15쿡(CUC·쿠바의 '외화와 바꾼 돈'의 단위, 미화 1달러=0.86쿡)으로 시작했다. 국가가 지급하는 월급이 미화로 15~30달러 수준인 쿠바 형편을 감안하면 이용자 부담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결국 사용자들의 항의로 가격을 2015년 7월 56%, 2016년 초와 지난해에 각각 25%를 내려 지금은 현지에서 확인하니 지역별로 1시간 이용 카드를 1~3쿡에 살 수 있었다. 인터넷 1시간 이용요금이 반 월급에서 시작해 하루~사흘 일당까지 떨어진 셈이다. 외국인에겐 부담이 되지 않겠지만, 대다수 쿠바 국민에겐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쿠바 정부가 가격으로 인터넷을 통제한다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공산당 기관지, “쿠바인 40%가 인터넷 접속”

로이터 통신은 지난달 24일 쿠바 정부가 네트워크 인프라 개발이 느린 이유로 높은 비용과 미국의 경제 제재를 들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4년 외교관계 회복에 합의하자마자 통신 지지와 서비스를 경제 제재 대상에서 즉시 제외했다. 쿠바 국민의 인터넷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쿠바 정부가 인터넷 통제를 위해 의도적으로 인프라 확대를 지연하고 있는 것이 진짜 이유라고 여긴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실제로 쿠바 정부는 미국 기업의 통신 분야 참여를 여전히 꺼린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지난 1월 “2017년 말 기준으로 쿠바인의 40%가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으며 이는 2010년보다 37%가 늘어난 수치”라고 보도했다.

외국 위성방송 국영 호텔은 되고 집에선 불법

쿠바 아바나 한 국영호텔의 텔레비전 채널 가이드.

쿠바 아바나 한 국영호텔의 텔레비전 채널 가이드.

인터넷은 국민에게 세계 사정을 직접 전달할 수 있지만, 현재 쿠바 매체는 변화하는 세상을 활발하게 전하지는 못한다. 쿠바에서 가장 큰 신문은 쿠바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다. 쿠바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 등이 1956년 게릴라전을 하러 멕시코에서 쿠바로 잠입할 당시 타고 왔던 요트 이름이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그란마는 2016년 11월 25일 세상을 떠난 피델 카스트로가 얼마나 쿠바를 사랑했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남겼는지를 추모하는 기사가 지금도 매일 같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호텔 객실에 들어가니 별세상이었다. LG 텔레비전으로 외국방송 채널을 수십 개나 볼 수 있었다. 미국의 CNN은 물론 스포츠 채널인 ESPN의 스페인어 방송도 나왔다. 영국의 BBC 월드, 프랑스 해외위성채널인 TV5와 프랑스24, 독일 위성방송인 도이체벨레(DW), 스페인의 tve, 이탈리아의 라이 이탈리아도 시청이 가능했다. 중국의 국제TV채널인 CGTN(China Global Television Network,中国環球電視網)은 물론 CCTV 채널 중 국제방송인 CCTV4와 다큐멘터리 채널인 CCTV9도 볼 수 있었다. 쿠바와 동맹 관계나 다름없는 베네수엘라 국영방송도 시청할 수 있었다. 수도 아바나를 벗어나 트리니다드 등 소도시로 옮겨가자 채널 숫자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

“정부에 단속이 있으면 국민은 대책이 있다”

현지 소식통은 이런 상황에서 위성안테나를 설치해 외국 방송을 시청하는 쿠바 국민이 나날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이는 불법으로 당국이 수시로 단속한다. 이에 따라 위성안테나를 설치하고 주변을 벽돌로 쌓아 굴뚝처럼 보이게 하는 등 다양한 위장 기법이 발달하고 있다고 한다. 현지인 통역은 이를 두고 쿠바 국민 사이에서 “정부에 단속이 있으면 국민은 대책이 있다”라는 가시 돋친 농담이 유행한다고 전했다.

 쿠바의 인터넷 사정은 좋지 않다. 국가가 지정한 일부 와아파이 공원이 아니면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모두 유료다. 국영 호텔 객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확산은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만 체제 결속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쿠바의 인터넷 사정은 좋지 않다. 국가가 지정한 일부 와아파이 공원이 아니면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모두 유료다. 국영 호텔 객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확산은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만 체제 결속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인터넷은 배출과 소통 창구: 문제는 변화 속도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의 확산은 쿠바 국민에게 하나의 불만 배출구 구실을 하는 분위기였다. 쿠바 국민에게 인기가 높은 한국이나 베네수엘라 연속극을 녹화해 DVD에 담아 팔기도 한다고 한다. 2016년 카스트로가 세상을 떠났을 때 후계자 라울 카스트로는 방송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이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전해 들은 쿠바 국민 중 상당수는 와이파이 공원에 몰려 해외에 사는 친지에게 이 소식을 전하느라 바빴다고 한다.

쿠바 인구는 1100만인데 망명이나 해외 취업 등으로 외국에 거주하는 쿠바인은 200만 명에 이른다. 인터넷은 이들 사이의 창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쿠바에서 2008년 이후 소규모 자영업이 허용되면서 쿠바에선 창업이 붐을 이뤘다. 대부분의 창업 자금은 해외 거주 쿠바인 가족이나 친척들이 보내는 자금이었다고 한다. 사업 설명은 대부분 인터넷 전화와 이메일로 이뤄졌다고 한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망명 쿠바인이 번 돈이 쿠바에 사는 친척에게 송금돼 민영 식당이나 택시 영업을 할 자금으로 변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하루가 다르게 확산하면서 쿠바는 매일 눈과 귀가 열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21세기 정보통신 시대에 쿠바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는 속도다. 변화의 끝은 어디일까. 북한에서도 이런 변화가 가능할까.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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