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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대미 수출액, 연간 1조3000억 피해 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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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 철강산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쏘아 올린 ‘관세폭탄’을 비켜 가지 못했다. 미국은 한국이 철강 제품을 세 번째로 많이 수출하는 국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철강 수출액은 32억6000만 달러(약 3조5000억원)를 기록했다. 앞으로 25%의 관세가 매겨지면 수출 차질을 피할 수 없다.

원유 채굴용 유정용 강관 직격탄 #정부·업계 ‘품목 제외’ 노력 병행 #반도체·자동차로 확산 우려 커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나이스(NICE)신용평가는 연간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의 철강 수출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철강업계의 지난해 대미 수출량은 총 354만t인데, 이 중 140만t이 감소할 것이란 계산이다.

특히 원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낼 때 쓰는 유정용 강관(강철로 만든 파이프) 제품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국내 생산 제품의 99%를 미국 시장에 수출할 정도로 대미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국제 유가가 크게 오르자 국내 업체들은 미국의 셰일오일 시장을 노리고 관련 제품 수출에 공을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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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백운규 산업부 장관 주재로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열었다. 백 장관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철강 수입을 부당하게 제한한 조치”라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검토 중이지만 실효성에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2~3년의 시간이 걸린다. 미국이 WTO의 결론을 무시해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앞에서 WTO는 사실상 무력화됐다”(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업체들은 ‘2차 피해’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수출길이 꼬이면 다른 지역을 공략해야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등 강판(강철로 만든 철판) 위주로 수출하는 업체의 미국 시장 비중은 3~4% 수준”이라며 “당장 피해가 크진 않겠지만 미국 이외의 시장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철강업계는 ‘품목 제외’ 노력을 병행하기로 했다. 전체가 어렵다면 일부 품목이라도 관세가 면제되도록 요청하는 게 피해를 줄이는 현실적 방안일 수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 내에서 한국산 철강을 사용하는 현지 기업이 나서서 한국산 철강 제품의 관세를 면제해 달라고 상무부에 청원할 수 있도록 미국 업계, 주 정부 등과 접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호무역의 파도가 다른 업종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도 우려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자동차 등도 안심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만일 미국의 무역 규제가 반도체·자동차 부품으로 확대되면 향후 5년간 한국의 대미 수출액이 13조원가량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심새롬·김도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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