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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폭탄' 터진 한국 철강업계, 올해만 1.3조 수출 피해

중앙일보

입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내 철강ㆍ알루미늄업체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입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내 철강ㆍ알루미늄업체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입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관세 부과 안에 서명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피해가 현실화했다. 국내 산업계는 철강에 이어 반도체·자동차 등 다른 품목으로 무역 규제가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송유관 등 강관 제작업체 직격탄" #"반도체·자동차 등으로 무역 규제 확산 우려" #"한국 정부, 미국 내 이해당사자 설득 나서야"

미국의 이번 조치로 국내 철강업계가 입을 수출 피해액은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나이스(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계의 지난해 총 수출량 3170만t 중 대미 수출량은 354만t(11.2%)에 달했다. 이중 추가 관세 부과로 줄어들 대미 수출량을 고려하면 전년 대비 140만t, 금액으론 12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최중기 NICE신용평가 기업평가1실장은 "이번 규제 현실화로 대미 철강제 수출이 위축될 것"이라며 "특히 대미 의존도가 높은 강관(강철로 만든 파이프) 제작사의 영업 실적에 위협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철강시장에서 수입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27.5% 수준이었다.(왼쪽) 수입물량 가운데 16.1%가 캐나다산으로 가장 많다. 자료=미 상무부

미국 철강시장에서 수입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27.5% 수준이었다.(왼쪽) 수입물량 가운데 16.1%가 캐나다산으로 가장 많다. 자료=미 상무부

지난해 기준 한국에서 생산된 유정용 강관(원유·천연가스 채취용 강철 파이프)중 99%, 송유관 중 80%가 미국 시장에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제 유가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 셰일오일 시장을 노리고 관련 제품 수출에 공을 들여 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세아제강·넥스틸·현대하이스코 등이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대형사들의 지난해 기준 미국 수출 비중은 3~4%인 데 비해 이들 제품은 미국시장 의존도가 특히 높다.

철강업계는 또 미국 이외 시장에서의 경쟁 격화에 따른 '2차 피해'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이 어렵게 되면, 미국 이외 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해지고, 개별 국가마다 한국산 철강 수입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등 강판(강철로 만든 철판) 위주로 수출하는 업체들의 미국 수출 비중은 3~4%로 크진 않지만, 미국 수출이 막힌 해외 경쟁사들과 미국 시장 밖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관건은 트럼프의 무역 규제가 지난 1월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발동에 이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하는 데서 그칠지다. 국내 산업계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자동차까지 통상 압박이 확산할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무역 규제가 반도체·자동차 부품 등으로 확대되면 앞으로 5년간 수출 손실 규모가 최대 13조원에 이르고 국내 일자리는 4만5000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최근 국내 반도체에 대한 관세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한국 자동차 업계에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고용 창출을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무역 규제가 다른 산업군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통한 해결은 당장 부닥친 무역 규제 피해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미국 정부와 국회, 이해당사자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본부장은 "WTO에 제소해도 그 결과는 최소 2~3년 뒤에야 나올 수 있다"며 "농·축산업 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익을 얻는 미국 내 이해당사자를 찾아 한국도 보호주의 정책을 펼 수도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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