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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삼바 췄던 의족 댄서, 평창 설원 ‘무한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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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016년 9월 리우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로봇과 함께 춤을 추는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 에이미 퍼디. 19세 때 수막염으로 두 다리를 절단한 그는 평창 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종목에 출전한다. [AP=연합뉴스]

2016년 9월 리우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로봇과 함께 춤을 추는 장애인 스노보드 선수 에이미 퍼디. 19세 때 수막염으로 두 다리를 절단한 그는 평창 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종목에 출전한다. [AP=연합뉴스]

지난 2016년 9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 리우 패럴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한 여성이 현란한 스텝을 선보이면서 로봇과 함께 삼바 댄스를 췄다. 그런데 그의 양 다리에는 의족이 눈에 띄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격정적인 춤을 선보인 그에게 많은 이들은 박수를 보냈다.

장애인 스노보더 39세 에이미 퍼디 #19세 때 수막염으로 두 다리 절단 #걷기도 힘들었지만 스노보드 계속 #방송 댄스 경연 프로그램 준우승 #뮤직비디오 출연하고 모델 활동 #“못 날면 뛰어라, 못 뛰면 걸어라 … #장애는 역경 아닌 한계 넘을 기회”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국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에이미 퍼디(39)다. 퍼디는 9일 개막하는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스노보드 크로스 선수로 출전한다. 평창 패럴림픽에는 49개국 570명의 선수들이 장애의 벽과 사람들의 편견을 뛰어넘기 위한 도전을 펼친다. 평창 패럴림픽 개막을 앞둔 지난 6일 퍼디는 인스타그램에 “이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 여행인가.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적었다.

에이미 퍼디. [사진 퍼디 인스타그램]

에이미 퍼디. [사진 퍼디 인스타그램]

마흔을 앞둔 퍼디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다. 18세까지만 해도 퍼디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쾌활한 소녀였다. 그러나 19세 때 병에 걸린 뒤 그의 인생항로는 완전히 바뀌었다. 퍼디는 세균성 수막염 진단을 받고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생존 확률이 2%도 안됐지만 그는 병마와 싸워 이겨냈다. 대신 퍼디는 신장 기능과 왼쪽 귀의 청력을 잃었다. 그리고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퍼디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좋아하던 스노보드를 탈 기회도 영영 없을 것만 같았다. 이 때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2015년 펴낸 자서전 『스노보드 위의 댄서』에서 “‘만약 내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퍼디의 언니 크리스털은 “사람들은 너에게 ‘핸디캡(handicap·장애)이 있다고 하지만 넌 여전히 양 손이 있잖아. 정확히 말하면 넌’풋(foot·발)디캡이지”라고 말하며 용기를 불어넣었다.

에이미 퍼디. [REUTERS=연합뉴스]

에이미 퍼디. [REUTERS=연합뉴스]

언니의 격려 덕분에 퍼디는 새로운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스노보드가 있었다. 스노보드를 다시 타기 위해선 발에 맞는 의족이 필요했다. 의족을 다리에 끼워 걷는 것만도 힘든데 보드까지 타는 건 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드를 타다가 산아래 계곡으로 의족이 떨어져 나간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스노보드를 타기 위해 퍼디는 의사의 도움을 받은 끝에 발에 꼭맞는 의족을 구했다. 다리를 절단한 지 1년 4개월 만에 그는 다시 스노보드를 타는데 성공했다. 퍼디는 주위 사람들에게 “스노보드를 타도 발이 시리지 않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에이미 퍼디. [사진 퍼디 인스타그램]

에이미 퍼디. [사진 퍼디 인스타그램]

퍼디는 장애인이 된 뒤 다시 태어났다. 그는 평창 패럴림픽 정보 공개사이트인 인포2018에 자신의 직업을 ‘선수이자 작가, 사업가, 디자이너, 강연자’로 소개했다. 퍼디는 2005년부터 남편인 다니엘 게일과 함께 장애인 선수들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후원 단체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댄싱 위드 더 스타에 나섰을 당시 에이미 퍼디. [사진 퍼디 트위터]

댄싱 위드 더 스타에 나섰을 당시 에이미 퍼디. [사진 퍼디 트위터]

그는 2014년엔 미국 ABC방송의 댄스 경연 프로그램인 ‘댄싱 위드 더 스타’ 에 출연해 놀라운 춤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살사, 왈츠, 룸바 등 일반 댄서들도 해내기 힘든 안무를 선보였던 퍼디는 이후 가수 마돈나의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모델과 배우로도 활동했다.

2015년 미국프로풋볼(NFL) 수퍼보울의 광고에도 출연했던 그는 현재 도요타와 코카콜라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27만명을 넘는다. 그는 “난 도전을 즐기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과제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부딪혀 볼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미 퍼디. [사진 퍼디 인스타그램]

에이미 퍼디. [사진 퍼디 인스타그램]

퍼디는 지난 2015년 미국 비영리재단에서 진행한 TED 강연회에도 출연했다. 그는 당시 “역경은 장애가 아니었다. 재능을 발견하고, 나에겐 새로운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퍼디는 또 인스타그램에선 “날지 못하면 뛰어라, 뛰지 못하면 걸어라, 걷지 못하면 기어라”는 글을 올렸다. 스노보드가 시범종목이었던 2014년 소치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던 그는 평창 패럴림픽에서도 메달 획득을 꿈꾼다. 퍼디는 NBC와의 인터뷰에서 “메달을 딴다고 성공했다고 볼 순 없다. 내가 최선을 다했는지, 즐거웠는지가 중요하다. 그것만 달성한다면 메달을 따지 못해도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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