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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수업료’ 냈지만 벤처 투자 이해시켰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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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호창성 대표는 ’이번 무죄 확정으로 벤처 투자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길 빈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호창성 대표는 ’이번 무죄 확정으로 벤처 투자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길 빈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무죄가 확정됐지만 구속 당시 떠들썩했던 상황과 명예회복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피해자인데도 명예회복을 위해 제 스스로가 나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무죄 확정된 호창성 더벤처스 대표 #스타트업 부당 지분 혐의 2년 재판

호창성(44) 더벤처스 대표의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목소리는 단호했다. 2년여간 재판을 받던 호 대표는 지난달 8일 대법원이 검찰 상고를 기각하며 무죄가 확정됐다. 검찰은 2016년 4월 중소벤처기업부(당시 중소기업청)가 주관하는 민간주도 창업지원프로그램 ‘팁스(TIPS)’의 운영사인 더벤처스의 호 대표를 구속기소했다. 정부 보조금을 미끼로 5개 스타트업으로부터 30억원 규모의 지분을 받았다는 등의 혐의였다.

호 대표는 구속 당시를 “상상도 못했었다”고 떠올렸다. 검찰 소환 때도 “죄가 없으니 성실히 조사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상밖 상황이 전개됐다. 검찰은 정부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음에도 호 대표가 스타트업의 지분을 부당하게 가로챘다는 쪽으로 몰아갔다.

호 대표는 “벤처투자의 기본에 대해 검찰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사회전반적인 이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무죄 확정이 되고 보니 벤처투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나름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호 대표의 공판 과정은 벤처투자의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컨퍼런스를 방불케 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프레젠테이션 자료와 동영상까지 동원됐다. 결국 법원을 설득해냈다.

호 대표는 “재판을 거치며 아내(빙글 대표 문지원씨)는 준법조인이 되다시피 했다. 모든 의견서의 최종 검수를 맡아준 아내에게 가장 고맙다”며 “끝까지 응원해준 분들이 계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로 말했다.

대학(서울대 전기공학부)시절 동양철학에 빠져 살았다는 호 대표는 졸업 후 요즘 한창 뜨는 인공지능에 관심을 뒀다. 그러나 너무 시대를 앞서갔다. 실패를 맛본 그는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머무르고 싶진 않았다. 2006년 결행한 미국 유학(스탠퍼드 MBA)은 그에게 새로운 전기가 됐다. 그곳에서 2008년 창업한 동영상 자막서비스업체 ‘비키’(VIKI)가 성공했고, 2013년 일본 라쿠텐에 2억 달러(약 2300억원)에 매각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돈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더벤처스를 설립했다. 이후 팁스의 운영까지 맡아 의욕적으로 활동했지만 구속과 재판으로 2년여간 정체기를 겪었다.

그러나 호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요즘 블록체인에 관심이 많다. 블록체인은 기본적으로 국경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이라며 “인도와 베트남 등에 사무실을 열어 기회를 탐색하고 있으며 올 여름엔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제가 냈던 ‘비싼 수업료’가 벤처 투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저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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