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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프리즘] 데이터는 과거정보, 미래변화에 끊임없이 호기심 가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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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박성원의 예측사회

톰 크루즈 주연 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는 범죄 발생 전에 범죄자를 예측해 단죄하는 미래 사회가 그려진다. 기계장치 안에 감금된 세 명의 예지자들의 초능력을 통해서다. 하지만 범죄 예측에서 예지자의 소수의견(minority report) 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래범죄수사국은 결국 해체된다. [중앙포토]

톰 크루즈 주연 SF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에는 범죄 발생 전에 범죄자를 예측해 단죄하는 미래 사회가 그려진다. 기계장치 안에 감금된 세 명의 예지자들의 초능력을 통해서다. 하지만 범죄 예측에서 예지자의 소수의견(minority report) 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래범죄수사국은 결국 해체된다. [중앙포토]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과거는 기억하고, 미래는 기획하는 시공간(時空間)으로 이해한다. 현재는 실행의 순간이다. 계획한 대로, 또는 주어진 여건에 맞춰, 혹은 주변의 흐름에 이끌려 미래의 현재로 진입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어디로 나아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결정한다. 이처럼 누구나 앞날을 헤아리지만 사실, 누구나 미래를 잘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

② 예측 정확도 높은 사람들의 특징

세계 최대의 스포츠용품 판매기업 나이키는 2000년 초, 4억 달러(약 4300억원)를 투자해 수요 예측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어떤 제품을 만들면 ‘대박’이 터질 것인지 예측하는 소프트웨어였다. 당시 미국에선 닷컴 버블이 최고조였다. 학계든 업계든 데이터만 넣으면 컴퓨터가 미래를 보여줄 것으로 떠들고 다녔다. 미국의 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2002년에만 기업들이 수요예측 프로그램에 투자한 돈이 190억 달러(약 20조5000억원)에 달했다. 그때 분위기가 그랬으니 나이키가 4억 달러를 투자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2000년초 컴퓨터 미래예측 유행했지만 실패

그러나 예측 프로그램을 도입한 지 9개월 만에 나이키는 예측 결과가 정확하지 않다며 대규모의 재고자산을 대손 상각한다고 밝혔다. 대박 상품으로 예측됐던 운동화 ‘에어가넷2’의 판매실적은 초라했다. 주식시장은 즉각 반응해 주가는 20% 이상 하락했고 기술혁신기업이라는 평판은 훼손됐다. 이 사건을 자세히 취재한 CIO의 기자 벤 월덴은 ‘비참한 4억 달러의 실험’이라고 혹평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월덴 기자는 이 사건 이후 2년 동안 여러 기업에서 실행한 예측 프로그램이 왜 실패하는지 다각도로 분석했다. 그가 밝혀낸 예측의 실패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우선, 입력 데이터가 부정확했다.

예컨대, 마케팅 부서가 1억 달러는 판매할 수 있다고 예측한 상품에 대해 판매부서는 그의 반인 5000만 달러를 예상한다. 마케팅 부서는 제품의 성공을 장담하지만, 판매부서는 예상 판매량을 낮춰 잡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불확실한 상황을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렇듯 부서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매 예측치는 매우 달라진다.

같은 데이터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의 판매량이 소폭 변동은 있지만,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유통업자는 판매량이 조금이라도 증가했다 싶으면 재고량이 빠르게 소진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예측치를 제조업체에 알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도록 하지만 결국 팔리지 않아 손해를 입는다.

설령 입력한 데이터가 정확하다고 해도 그것은 과거를 반영한 데이터다. 과거가 미래를 보여줄 수는 없다. 예컨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발로 스킨케어 제품이 한 달 만에 1년 치가 판매될 것으로 예측한 기업은 없었다. 데이터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

사실 예측 실패의 결정적인 이유는 예측 프로그램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영진의 태도였다. 이사회는 수요 예측 프로그램을 통해 도출한 결과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은 채 맹신했다. 월덴은 “뛰어난 예측은 정확한 데이터와 현명한 사람들의 조합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필립 테틀락 교수는 이 질문을 붙들고 수십 년을 씨름하면서 재미있는 가설을 하나 세웠다. 예측의 정확도는 미래에 대한 태도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이론이다. 그는 미래에 대해 확신적 태도를 보이는 그룹과 중립적 태도를 보이는 그룹으로 참가자들을 나눴다. 그리고 이들에게 미래의 상황을 나타내는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예를 들어, 1년 뒤 어느 나라가 유로존을 탈퇴할 것인가. 또는, 8개월 내 추가로 몇 나라가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밝힐 것인가. 이렇게 묻고 예측의 시점이 지나면 어느 그룹이 더 정확하게 예측했는지 따져보았다.

예측 정확도는 미래에 대한 태도에 따라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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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미래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보인 그룹의 승리였다. 이 그룹은 성실성·신중함·성찰적·이종 시각의 통합성·상세한 정보에 근거한 판단·지속적 정보갱신의 특성이 다른 그룹보다 두드러졌다. 이들은 어느 예측의 결과나 정보를 한 번에 신뢰하지 않는다. 여러 다른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항상 열려 있으며,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자신이 예측한 결말이 틀려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깨달으면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실상 예측의 정확도가 높다는 것은 꽤 역설적이다. 이런 실험 결과는 그가 2015년 펴낸 ‘슈퍼 포캐스팅’에 담겨있다.

기업으로 분석 대상을 확대해도 미래를 잘 예측하는 태도에는 다른 점이 없다. 다양한 변화를 끊임없이 감지하고, 환경의 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변화의 대응 전략을 세우고 성실하게 준비하는 조직은 미래를 잘 예측한다. 미래지향적 기업을 연구하는 로벡과 쿰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기업을 ‘경계를 멈추지 않는’(vigilant) 기업으로 분류하고, 7년 뒤 비교 기업들과 대비해 수익률과 시가총액 성장률에서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수익률에서 뛰어난 실적을 나타낸 기업 중 63%와, 시가총액 성장률에서 평균을 능가한 기업 중 67%가 ‘경계를 늦추지 않는’ 그룹에 속한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 1월 미래학계의 저명한 학술지 ‘기술예측과 사회 변화’에 발표됐다.

앞서 사례들을 통해 예측력을 높이려면 이제까지 익숙한 학습과 다른 학습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는 학습이 아니라 나의 무지를 감추는 내 안의 틀을 찾아 허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관계하지 않아서, 관심이 없어서, 논리적으로 해명이 되지 않아서, 경험하지 않아서, 기존의 관념을 벗어나서, 알고 싶지 않아서, 내 생각과 달라서, 너무 엉뚱해서 등의 이유로 무시하거나 간과한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의 눈을 가린 인식의 장벽을 하나씩 허물어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야 예측력이 높아진다.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많은 경우, 정보와 데이터만 있으면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박성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spark@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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