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업무영역 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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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H투자금융(주)은 오는28일 회사창립 이래 처음 이색적인 모임을 갖는다.
회사의 진로를 논의하기 위한 대토론회다. 토론회에는 전직원이 참석, 자기의 주장을 펼 예정이다.
회사측이 이 같은 모임을 마련하게 된 것은 금융산업개편과 함께 불가피하게 밀어닥칠 제2금융권의 업무영역 조정에서 회사가 선택해야할 업종을 둘러싸고 내부에 의견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의견만 해도 중소기업은행으로의 전환, 증권회사로의 변신, 종합금융회사로의 개편, 현행체제유지 등 중구난방이다.
금융산업개편 작업에서 단자회사의 운명이 어떻게 결말이 날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사원들의 의견을 한곳으로 수렴, 회사가 나가야 할 방향만은 미리 정해 놓고 싶다는 게 회사측의 생각이다.
H투자금융처럼 요란스런 집회까지는 열지 않고 있어도 제2금융권에 속하는 단자회사·종합금융·투자신탁·상호신용금고·증권회사 등은 물론 일반은행과 특수은행들까지 금융산업 개편작업에서 정해질 금융기관간 업무조정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가 이번 개편작업에서 금융기관, 특히 제2금융권의 업무영역 재조정을 주요과제로 꼽고 있는 것은 그 동안의 무원칙한 회사설립 및 상품 인가로 제2금융권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데다 업종간 영역의 중복 및 과당경쟁으로 금리체계의 왜곡 등 부작용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설립과 상품인가가 얼마나 무원칙했는가는 단자회사 수를 32개나 만들어 놓은 것이라든가, 증권회사 경영이 어렵다고 단자회사 업무인 CP(신종기업어음)업무를 증권회사에 인가한 것, 82년 6·28금리인하 조치로 은행수지가 악화되자 금리를 사실상 올려주기 위한 편법으로 CD(양도성 예금증서)발행을 허용한 것 등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리가 높은 체2금융권으로 자금이 몰리자 최근에는 은행에 연리 12%짜리 자유저축예금을 인가, 예금금리가 대출금리 (11·5%)를 앞지르는 역금리체제를 만들어 놓았으며 투자신탁의 BMF(통화채권펀드), 단자회사의 CMA(어음관리구좌)와 성격·금리가 유사한 기업금전신탁을 은행에 허용, 제2금융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금융산업 개편의 기본방향은 경쟁원리와 시장기능에 의한 금융의 자율화와 국제화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에 제한을 가하지 않고 금리나 상품을 자유로 결정토록 함으로써 금융제도를 현재의 전업주의에서 겸업주의체제로 바꾸어 나가겠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고객들의 금융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다양해져 어느 금융기관이고 여러 가지 금융상품을 제공할 수 있어야하고 그보다도 선진각국이겸업체제로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의 국제화시대 경쟁에 살아 남으려면 경업주의가 불가피해 지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을 재조정, 교통정리를 하려는 것은 현행 체제에서 바로 업무영역을 풀어놓아 자유경쟁을 시키는 경우 구조적으로 허약한 제2금융권회사들이 하루아침에 도태되어 심각한 파문을 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선 헝클어진 실뭉치처럼 얽히고 꼬인 금융기관간의 업무영역을 정리, 단자회사·종합금융회사·증권회사 등 업종별로 고유업무와 부대업무를 정해주어 당분간 고유업무에 주력하면서 부대업무로 점차 영역을 확대, 앞으로 도래할 겸업시대에 대비한 능력과 기반을 갖추어 나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합병이나 전업을 쉽게 하기 위해 새로 법률을 제정, 절차를 간소화하고 양도소득세 면제등 세제상의 혜택을 주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업무영역의 조정에 대해 이번 발표된 정부개편안은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23일 한은이 내놓은 금융산업개편방안은 업무영역조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만하다.
한은이 내놓은 개편안의 특징은 단자회사·종합금융회사의 자체어음발행업무를 폐지하고 단자회사는 기업어음중개업무에, 종합금융은 외환운용관련 서비스에 전념할 것을 제시하는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기존업무에서 수신업무를 축소, 중개업무에 특화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또 은행의 업무중에서는 통화신용정책의 통제범위에서 벗어나는 상호부금·금전신탁 등을 폐지 혹은 장기화하도록 건의하고 있다.
이 같은 방안은 한은의 통제밖에 있는 비은행금융기관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통화신용정책에 제약을 주고 있다는 한은 나름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제2금융권의 반발이 예상되기도 한다.
외환은행·중소기업은행·국민은행·주택은행 등 국책은행의 민영화요구도 이들이 경제여건의 변화로 설립당시의 목적과 기능이 퇴색했다는 점외에 현재 특수은행으로서 한은의 통제권 밖에 있는 이들 은행을 민영화시켜 관할권내에 두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어쨌든 이번 개편작업으로 금융기관은 기존업무가 떨어져나가고 통폐합이 불가피해지는 격동기를 맞게될 것으로 보인다.

<신성순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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