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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민자"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은 기예르모 델 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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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열린 제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4관왕을 안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5일 열린 제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4관왕을 안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백인들만의 잔치(#OscarsSoWhite)”라는 비난은 과거에 묻었다. 5일(현지시간 4일) 미국 LA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성뿐 아니라 인종‧문화적 다양성을 지지하는 공존의 장이었다.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타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는 작품상·감독상과 미술상·음악상까지 올해 최다인 4관의 영광을 누렸다. 멕시코 출신 감독이 감독상을 가져간 건 최근 5년 동안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버드맨’과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셰이프 오브 워터'로 첫 오스카 트로피를 안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연합=AP]

'셰이프 오브 워터'로 첫 오스카 트로피를 안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연합=AP]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를 감격스레 받아든 델 토로 감독은 수상 소감으로 “나는 이민자”란 말부터 했다. 그는 “영화를 사랑하며 자란 멕시코 아이가 이처럼 영광스런 자리에 섰다는 게 꿈만 같다”면서 “젊은 영화학도들에게 이 상을 헌정한다. 젊은 세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우리(기성세대)에게 보여주는 사람”이라 했다.
 SF 판타지 장르로는 처음 작품상을 거머쥔 ‘셰이프 오브 워터’는 냉전시대 미국 비밀 연구소에 잡혀 온 물고기 인간(더그 존스 분)과 언어장애가 있는 청소부(샐리 호킨스 분)의 종을 뛰어넘는 사랑을 그린다. 델 토로 감독은 “영화 매체가 멋진 건, 모래 위의 ‘경계선’을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그 선을 더 깊게 그으라고 강요할 때 말이다”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 현정부의 반이민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겟 아웃'으로 각본상을 받은 조던 필레 감독. [연합=AP]

'겟 아웃'으로 각본상을 받은 조던 필레 감독. [연합=AP]

 현대판 노예제도를 풍자한 저예산 호러 코미디 ‘겟 아웃’으로 대중과 평단에 깜짝 주목을 받아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조던 필레 감독은 각본상을 받았다. 배우 겸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다 이 영화로 연출에 데뷔한 그는 “제작이 어려울 거란 생각에 시나리오를 쓰다 멈추길 20번 반복했다”면서 “이 상은 내게 큰 의미”라고 했다. 오스카상 90년 만의 첫 흑인 감독상 수상은 불발됐다.

픽사 19번째 애니메이션 '코코'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픽사 19번째 애니메이션 '코코'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비바(Viva) 멕시코”란 환호는 애니메이션 부문에서도 들려왔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 스튜디오의 '코코'는 장편애니메이션‧주제가상 등 2관왕을 차지했다. 서구문화 대신 멕시코 전통 명절 ‘죽은 자들의 날’을 전면에 내세운 저승세계 모험담이다. ‘토이 스토리3’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은 리 언크리치 감독은 “멕시코 사람들이 전통과 예술을 아름답게 가꿔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영화”라고 영광을 돌렸다. 4년 전 ‘겨울왕국’의 ‘렛 잇 고’에 이어 ‘코코’의 ‘리멤버 미’로 남편 로버트 로페즈와 함께 또 다시 주제가상을 받은 크리스틴 앤더슨 로페즈는 이 부문 후보군이 “문화적으로 다양할뿐 아니라, 성비도 50대 50”이라며 “다른 부문도 주제가상만큼 다양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휴 잭맨 주연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의 괴짜 서커스단. 주제가 '디스 이즈 미(This is Me)'가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휴 잭맨 주연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의 괴짜 서커스단. 주제가 '디스 이즈 미(This is Me)'가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 날 시상식은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의 ‘디스 이즈 미’, 미국 최초 흑인 대법관(채드윅 보스만 분) 실화를 다룬 ‘마셜’의 ‘스탠드 업 포 썸싱’ 등 소수자의 목소리를 노래한 주제가상 후보곡 공연과 더불어 스타들의 발언으로 한층 달아올랐다. '블랙 팬서'의 배우이자 케냐 출신인 루피타 뇽은 “꿈은 미국의 바탕이다. 모든 꿈 꾸는 이들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주연‧각본을 겸한 영화 ‘빅 식’에서 백인 여성과 사랑에 빠진 파키스탄 이민 2세를 연기한 실제 파키스탄 출신 쿠마일 난지아니는 관객도 다양해지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젠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영화가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남우주연상 호명에 나선 백발의 배우 헬렌 미렌과 제인 폰다는 “획기적이었던 것들이 표준이 되고,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로 묶여나가고 있다”고 했다.

연기상 수상 배우들. (왼쪽부터) '쓰리 빌보드'의 샘 록웰(남우조연)과 프랜시스 맥도먼드(여우주연), '아이, 토냐'의 앨리슨 제니(여우조연),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만(남우주연). [연합=AP]

연기상 수상 배우들. (왼쪽부터) '쓰리 빌보드'의 샘 록웰(남우조연)과 프랜시스 맥도먼드(여우주연), '아이, 토냐'의 앨리슨 제니(여우조연),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만(남우주연). [연합=AP]

 이날 시상식에선 최초, 최고 기록도 나왔다. 2012년 첩보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로 후보에 오른 것 외에 오스카상과 인연이 없었던 영국 배우 게리 올드만은 나치에 맞선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를 연기한 ‘다키스트 아워’로 첫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올해 90세로,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령 수상 기록을 세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색상 주인공 제임스 아이보리. [연합=AFP]

올해 90세로,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령 수상 기록을 세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각색상 주인공 제임스 아이보리. [연합=AFP]

 동성애에 눈 뜬 사춘기 소년의 첫사랑을 그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각색상을 받은 제임스 아이보리는 올해 90세로, 역대 오스카상 최고령 수상 기록을 세웠다. 이전까지 최고령 수상자는 2016년 서부극 ‘헤이트풀8’으로 88세에 음악상을 가져간 엔니오 모리꼬네다. 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 등으로 후보만 14번 올랐던 69세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는 ‘블레이드 러너 2049’로 첫 촬영상 수상의 기쁨을 맛봤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가 14번 후보 호명만에 처음 오스카 촬영상을 거머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 사진 소니픽쳐스]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가 14번 후보 호명만에 처음 오스카 촬영상을 거머쥔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 [ 사진 소니픽쳐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전쟁 영화 ‘덩케르크’는 음향편집상‧음향믹싱상‧편집상 등 기술 부문 3관왕에 그쳤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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