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폭로 예고’까지…“사과 안 하면 7일 대자보 붙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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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캡처]

[페이스북 캡처]

성 희롱·추행·폭행 등을 폭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사회 각계로 퍼지는 가운데 이 같은 폭로를 예고하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글이 대학가에 등장해 학생들이 설왕설래하고 있다.

울산 한 대학 ‘동아리 단톡방 성희롱’ 경고 #전문가 “협박성 경고 미투 본래 취지 아냐”

지난 1일 울산의 한 대학 대나무숲 페이스북(구성원들의 익명 게시판)에 ‘엄중히 경고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요지는 여학생들의 외모·몸매·성격을 신랄하게 평가한 남학생들을 폭로하겠다는 내용이다.

익명의 글쓴이는 “동아리 두 곳의 단톡 성희롱 캡처본이 들어가 있는 대자보를 붙일 계획”이라며 “3월 7일 등교 시 누구나 볼 수 있게 게시하겠다”고 썼다. 글쓴이는 “캡처본 하단에 동아리명과 해당 톡에 있는 사람 이름을 병기하겠다”고 덧붙였다.

글쓴이는 또 “7일에 대자보 게시를 예고하는 것은 폭로가 아니라 반성과 자정 노력을 원하기 때문”이라며 동아리 두 곳 관계자 명의로 된 전지 1장 이상의 사과문 게시를 요구했다.

이 글에 학생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지지한다”는 댓글과 “성희롱당한 여학생의 신변을 확실히 보호해줄 수 있는지 의문이 간다”는 우려의 댓글 등이 잇따르고 있다.

재학생 김모(23)씨는 “협박성이 강하게 느껴진다”며 “미투 운동을 좋게 보지만 폭로를 무분별하게 믿는 것은 위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학생은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렇게까지 했겠느냐”고 글쓴이를 지지했다.

학교 관계자는 “익명 글이라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대응하기 어렵다. 7일에 정말 대자보가 게시될지 어떨지 알 수 없다”며 “학교 측에 공식적으로 해당 건으로 보이는 투서가 들어온 적은 없다”고 말했다.

채규만(심리학과) 성신여대 교수는 “미투 운동 폭로가 언론이나 SNS에 일방적으로 노출돼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협박성 경고로 많은 남성을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 미투 운동의 본래 취지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채 교수는 “피해자 신변을 보호하고 폭로 내용의 진실성을 평가하는 단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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