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기의 反 금병매] (130)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서문경이 아니잖아. 왜 저 사람을 죽였지?"

"사람을 잘못 보고 그랬나?"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무송은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달아나야 한다. 달아나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두 다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살인자들을 잡아 법의 심판대 앞에 세우려고 했던 자신이 살인자가 되고 만 현실이 하도 기가 막혀 몸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신고를 받고 달려왔는지 보갑(保甲:포졸에 해당함)들이 무송을 에워쌌다. 그 보갑들은 원래 포도대장인 무송의 지휘를 받던 졸개들이었다. 보갑들은 자기들 대장이었던 자를 살인 현장에서 체포해야 하는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당장이라도 무송이 버럭 고함을 지르면 모두 흩어져 달아날 것만 같은 보갑들이었다.

보갑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무송 쪽으로 포위망을 조금씩 좁혀갔다.

"그렇게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평소에 그렇게 가르쳤더냐? 범죄를 저지른 자를 용감하게 체포하도록 하라."

무송이 두 손을 내밀어 보갑들이 포승을 묶기에 편하도록 해주었다. 보갑들이 다가와 포승을 무송의 두 팔목에 감아 묶었다. 그런데 아주 느슨하게 감아 무송의 팔목이 죄지 않도록 하였다.

"이놈들아, 범죄인을 이렇게 느슨하게 묶으면 어떡하느냐? 더 단단히 묶어라."

그러나 보갑들은 더 이상 무송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보갑들 중에는 눈물을 훔치며 무송을 호송해가는 자들도 있었다. 보갑들은 살인 현장의 증인들로 술집 주인인 왕란과 기녀들인 포씨와 우씨들도 데리고 갔다.

무송의 호송 행렬을 구경하려고 사자가 사람들이 다 몰려나오고 청하현 전체가 무송의 살인사건으로 떠들썩하였다.

"서문경은 죽지 않고 멀리 달아났다며."

"이제 달아날 필요 없겠구먼. 자기를 죽이려는 자가 살인자가 되어 잡혀들어가니."

"서문경은 운도 좋아. 세상에서 제일 아리따운 여자도 얻고 원수도 없어지고 말이야."

"세상 일이 묘하고 묘해. 악인이 더 잘 되고 착하게 살려는 자는 저리 재수가 없으니."

얼마 후 청하현 아이들은 다음과 같은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장씨가 술을 마셨는데 이씨가 취하고(張公吃酒李公醉)

뽕나무가 칼에 맞았는데 버드나무가 쓰러졌네(桑樹上吃刀柳樹上暴)

현감 앞에 다시 서게 된 무송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현감이 소리를 높여 무송을 꾸짖었다.

"아무 증거도 없이 무고한 사람을 고소하더니 이제는 대낮에 사람까지 죽였으니 세상에 그런 포도대장이 어디 있나?"

"사람을 죽인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으나 아무 증거도 없이 무고한 사람을 고소했다는 말씀은 너무 억울하옵니다."

"아직도 헛소리를 하는구나. 이놈을 형틀에 묶어 매우 쳐라!"

포졸들이 무송을 형틀 위에 엎어지게 하여 포승으로 묶고는 곤장을 때리기 시작했다.

"너희들 대장이었다고 슬슬 때리면 안 된다. 있는 힘껏 내리쳐라!"

현감이 지켜보고 있는 터라 포졸들은 무송을 봐주고 싶어도 봐줄 수가 없었다. 곤장을 스무 대 맞고 나자 무송의 엉덩이는 터져서 흐물흐물해지고 피범벅이 되고 말았다.

"현감님, 제가 죽더라도 저의 형님의 원수는 꼭 갚아주십시오."

"이놈이 그래도 입이 살아 있구나. 곤장을 쉰 대 더 내리쳐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