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무엇이 문제인가(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금융산업발전심의회를 거쳐 20일 제6차 5개년계획 조정위원회에 상정된 금융산업개편안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가야할 방향제시와 함께 일대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관심을 끌고 있다.
정부가 이 시점에서 서둘러 금융산업개편을 중요한 정책과제로 들고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정치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특히 그동안 정부의 시녀로 전락했던 금융의 자율화 욕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국제수지흑자의 정착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금융제도의 개편이 불가피해졌고 교역규모의 확대등 국제화추세에도 적절히 대응해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금융계 내부의 사정도 정부 주도적인 경제개발을 뒷바라지하는 과정에서 경쟁원리와 시장기능을 무시한 타율적 경영으로 온갖 불합리와 수지악화를 감수하게 되어 대수술을 하지 않고는 제기능을 다할수 없게 되어있다.
정부가 은행을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취급해 왔는가는 70년대 해외건설을 뒷받침한다는 취지로 마련한 해외건설촉진법의 내용과 그 결과가 어떠했는가를 보면 쉽게 짐작할수 있다.
건설부가 중심이 되어 만든이 법률은 우리건설업체가 해외에서 공사를 따기만하면 은행은 그 공사의 수주내용이 부실의 소지를 안고 있든 않든 무조건 지급보증을 해주도록 했었다.
이 법률을 등에 업고 한때는 78개 건설업체가 해외에 진출, 마구 공사를 따냈고 자본금 1천억원내외의 은행이 1개건설업체에 2천억∼3천억원의 지급보증을 서는 무리를 감행해야했다.
결국 단가도 제대로 계산하지못한 마구잡이식 건설수주로 건설업개가 부실과 도산의 회오리에 휘말리게되자 정부는 부실기업정리라는 명목으로 그 부담을 은행에 떠넘겼고 지금도 각 시중은행은 엄청난 부실채권으로 속빈 강정같은 꼴이 되어 있다.
이번에 마련된 금융산업개편안은 이처럼 중환자 신세가 된 금융산업에 근본적인 수술을 단행해서 정부와 금융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금융산업에도 경쟁원리와 시장기능을 도입, 자력으로 국제화시대를 헤쳐나갈수 있도록 만들겠다는데 그 근본목적이 있다고 할수 있다.
이같은 시각에서 볼때 금융산업개편의 최대의 관심사는 금융이 어느 정도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 자율성을 갖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그리고 자율성보장에서 최대의 관건이 되고 있는 것은 △금리의 자율화 △중앙은행의 독립성 △은행경영의 자율화문제로 집약될수 있다.
이번 개편안은 은행여신금리의 자유화, 프라임레이트제도의 도입, 정책금융의 축소, 금융기관에 대한 산업재벌의 참여금지,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제고, 외환 및 자본시장의 단계적개방등 광범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있다.
그러나 막상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은행의 자율경영문제등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용어로 내용을 얼버무리거나 문제의 핵심을 피하고 있다.
예컨대 중앙은행의 독립성문제에 대해서는 「통화신용정책 및 관련업무에 대한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 재조정」이라는 정도에 그치고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기능과 운영에 대해서도 「기능과 구성을 보강하여 중립적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기반을 마련하겠다」고만 했을뿐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의장의 재무장관 겸직문제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은행의 자율적 경영과 관련, 소유의 문제에 대해서도 산업개발의 금융기관 참여를 금지한다는 것과 금융을 전업으로하는 금융전문기업 및 기업가를 육성하겠다는 점은 명백히 밝히고 있으나 지금처럼 시중은행장의 임명에 정부가 관여할 것인지, 손을 뗄 것인지하는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되지 않고있다.
재무부 관계자의 말대로 이개편안은 어디까지나 개편방향과 과제만을 제시한 것이고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서 결정하겠다는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금융산업은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부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 특히 산업정책과는 떼려야 뗄수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많다는 얘기다.
정부가 거창하게 추진하는 금융산업개편이 명분에 쫓겨 다른 무리를 낳는다든지, 현실적 제약에 밀려 이름뿐인 개편작업에 그친다면 처음부터 안하니만 못할수도 있다.
화려한 간판보다는 간판없이 내실을 다져가는 것이 더 바람직할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신성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