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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을 갖고 놀다 … 문제적 지휘자 쿠렌치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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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그리스 태생으로 러시아에서 경력을 시작해 현재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급진적으로 해석한 음반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 소니 클래시컬]

그리스 태생으로 러시아에서 경력을 시작해 현재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급진적으로 해석한 음반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 소니 클래시컬]

지휘자 쿠렌치스의 차이콥스키 ‘비창’ 앨범 커버. [사진 소니 클래시컬]

지휘자 쿠렌치스의 차이콥스키 ‘비창’ 앨범 커버. [사진 소니 클래시컬]

“바로 첫 소절부터 자세를 고쳐 앉게 된다. 이 음반(작은사진)은 이웃이 외출한 날 혹은 잠이 오지 않는 저녁에 가장 큰 음향으로 듣는 게 좋다.” 영국 음반 평론지 그라모폰의 비평가 피터 콴트릴은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45)가 녹음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듣고 이렇게 썼다.

집중리뷰 #가볍고 빠른 연주로 세계적 주목 #“급진적 vs 참신하다” 논쟁 일으켜

쿠렌치스는 요즘 세계 무대에서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지휘자로 꼽힌다. 젊고 기량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 급진적인 해석을 담은 음악을 내놓는다는 점에서다. 그리스 아테네 태생인 쿠렌치스는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페름의 오페라 발레 극장에서 지휘자로 일했고 올해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남서독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가 됐다. 그가 발표한 음반 중 2004년 페름 오페라 극장 전속으로 조직한 오케스트라 무직아에테르나와 함께 한 연주가 특히 화제다.

지난해 소니 클래시컬의 레이블로 발매된 차이콥스키 ‘비창’ 음반은 이달 한국에서도 라이선스로 발매됐다. 라이선스 발매 이전에 수입반도 이미 1000장 가까이 판매됐다. 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은 “(쿠렌치스는) 현재 가장 핫한 지휘자”라며 이번 앨범을 “21세기 광인이 19세기 명곡에 들이댄 날카로운 메스”에 견줬다.

쿠렌치스의 ‘비창’은 가볍고 빠르다. 흔히 ‘죽음의 음표’로 쓰인 곡이라 불리는 이 침울한 교향곡을 쿠렌치스는 경쾌하게 끌고 간다. 이 해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두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소리가 날카롭다, 쾌감이 있다

정만섭 음악평론가·KBS ‘명연주명음반’ 진행자 

정만섭 음악평론가·KBS ‘명연주명음반’진행자

정만섭 음악평론가·KBS ‘명연주명음반’진행자

이 시대에 하나쯤 나와야 할 음반이다. 참신하고 날카롭다. ‘비창’ 교향곡에서 반짝 깨는 뭔가를 일깨워준다. 수십 년 전엔 ‘한 개성 하는’ 지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지휘자가 사라졌다. 밋밋하고 안전한 해석만 많아진 요즘 이런 해석이 나와 반갑다. 물론 예프게니 므라빈스키(1903~88)의 ‘비창’과 같은 절대 명반은 아니다. 아무래도 공력이 짧고 연륜도 부족하다. 하지만 이 시대에 이런 개성을 드러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듣는 쾌감이 있다. 젊은 지휘자가 시골 악단에서 이런 사운드를 낼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음악의 해상도와 세부 묘사가 뛰어나다. 지휘자로서는 스피디하게 갈 것인가, 아니면 템포를 늦추고 화성적으로 완성된 연주를 할 것인가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휘자는 세부 묘사가 다 들어있게 하면서 빈틈없도록 음악을 완성했다. 쿠렌치스의 ‘비창’은 빠르긴 하지만 조련이 돼 있다. 다르게 해석한 가치가 있는 연주다.

특히 3악장이 좋다. 빠른 속도감으로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음표를 직설적으로 쏟아내며 끝까지 몰아붙인다. 물론 4악장에서 영탄조의 부족함을 지적할 수도 있다. 철학적인 깊이, 두터운 텍스처를 바란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설적 지휘자 헤르만 아벤트로트(1883~1956)마저 쿠렌치스의 ‘비창’ 3악장을 들으면 손을 들어줄 것 같다.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이 기존의 지휘자들과 다르긴 해도, 자신만의 탄탄한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쿠렌치스의 ‘비창’은 파격이라기보다 ‘최근에 없었던 연주’라 부르는 게 맞다.

세부에만 집착, 큰 그림이 없다

김광현 원주시향 상임지휘자

김광현 원주시향 상임지휘자

김광현 원주시향 상임지휘자

과연 악보에 없는 디테일을 넣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음악은 청중을 흥분시켜야 할까. 아니면 감동을 줘야할까. 쿠렌치스의 ‘비창’을 들으며 떠오른 의문이다. 지금껏 수많은 지휘자가 발표한 ‘비창’ 교향곡 중 최고는 단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과 므라빈스키의 녹음이다. 둘은 큰 그림을 우직하게 그려나간다. 카라얀은 울창한 삼림 전체를 동서로 가로질러 보여주고, 므라빈스키는 빙하와 그 위에 솟은 뾰족한 봉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낸다.

쿠렌치스는 과수원을 걸으며 나무에 열린 열매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는 듯하다. 그가 보여주는 열매들은 한결같이 광채가 날 정도로 빛난다. 어두움은 없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의 디테일한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매우 충실하게 반응한다. 현악기나 관악기는 마치 푸가처럼 각 성부를 또렷하게 연주한다. 심지어 팀파니는 같은 소절 안에서도 지휘자의 의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음악적 감정을 분출한다.

지휘자 쿠렌치스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도 충실해 같은 곡 심지어 같은 악장 안에서도 다른 음악을 구상해낸다. 그는 의도적으로 프레이즈를 조각내고 금관 파트의 길고 짧은 음가 하나하나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주저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악보에 없는 디테일을 이렇게 연주에 넣어야 할까. 예를 들어 말러의 교향곡에서 모든 악기의 소리가 다 들리도록 대위법적으로 연주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말러가 대위법적으로 작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콥스키는 완벽한 화성적 짜임새를 가지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거대한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기에는 세부 묘사가 너무 두드러진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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