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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현송월 대표단도 고민했다, 짜장면과 짬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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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호 28면

지상 123층, 높이 555m로 현존하는 국내 최고층 빌딩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가 개장하면서 ‘전망’ 가치가 한층 올라간 식당이 있다. 서울 잠실역 사거리의 타워 맞은편에 자리한 롯데월드호텔 32층 중식당 ‘도림’이다. 도림은 롯데호텔서울(명동) 본점 뿐 아니라 부산·울산 등의 롯데호텔도 공통적으로 쓰는 중식당 이름이다. 화교 2세 접시닦이로 출발해 입지전적인 성공 신화를 쓴 여경옥(55) 셰프(상무)가 총괄 지휘한다.

강혜란의 그 동네 이 맛집 #<17> 잠실동 도림

알록달록한 롯데월드 어드벤처 구조물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꼭대기층에 내렸다. 홀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니 햇빛 따라 커튼월 반사 색상이 달라지는 거대한 유선형 빌딩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선을 창 아래로 돌리면 번화한 도심 소음을 묵묵히 끌어안은 석촌 호수가 펼쳐진다. 날로 부유해지고 활력을 더하는 메가시티 서울의 중심에 선 기분이다.

▶도림
전화번호 02-411-7800
주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240 (잠실동 40-1) 롯데호텔월드 32층
매일 12시~오후 3시, 오후 6시~10시

이 풍경을 북한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장도 보았을 것이다. 현 단장을 비롯한 북측 평창올림픽 사전방문단은 지난달 22일 이곳에서 점심으로 ‘오룡(烏龍)’ 코스를 먹었다. 특미전채요리를 시작으로 제비집 게살수프, 어향소스 가지 새우, 두치소스 통전복, 흑후추소스 한우 안심, 식사, 계절후식으로 이어지는 13만8000원짜리 코스다. 도림 전체 메뉴 중에선 중간급에 속한다.

‘오룡’보다 한 단계 아래인 ‘복(福)’ 코스를 골랐다. 게살수프 재료에서 제비집이 빠지고 통전복 대신 삼선 고추잡채가 나오는 등 조금 다르긴 해도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는 광둥식 중식의 기본은 그대로다. 8시간 우린 육수에 대게살을 잘게 찢어 담아낸 수프가 위장까지 따뜻하게 흘렀다. 이 한그릇만 해도 북녘에서도 온 누구라도 환대받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넉넉한 서양 식기에 1인분씩 섬세하게 플레이팅한 찜·조림 요리가 이어졌다. 복 코스엔 딤섬 2종도 포함돼 있다. 속이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고 쫀득하게 피를 두른 부추 교자에선 향긋한 봄이 이르게 느껴졌다. 새우를 곱게 다져 속을 채우고 맨 위엔 한 마리를 통째 올린 쇼마이 딤섬도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웬만한 스테이크 분량에 맞먹을 정도로 두툼하게 썰어 흑후추로 풍미를 더한 한우 안심까지 이르면 함포고복(含哺鼓腹)이 이런 거구나 싶다.

하지만 마지막 선택이 남았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무엇을 택해도 나머지 다른 메뉴가 부러워지는 무한반복의 고뇌 앞에 천하의 현송월도 다를 바 없었나보다. 여 셰프가 전하는 후일담은 이렇다.

“북측 방문단이 온다는 걸 전날 연락받았어요. 워낙 일정이 빡빡하니까 식사 메뉴를 아예 통일하기로 하고 전체에게 짜장면을 내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현 단장이 ‘짬뽕이 먹고 싶다’는 거예요. ‘짬뽕은 좀 맵습니다’ 했더니 괜찮다고. 그래서 현 단장에게만 둘 다 맛보기용으로 냈어요. 짬뽕도 안 맵다며 잘 먹었고 나중엔 ‘짜장면이 더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도림의 짜장면은 호텔 특급식당 중에서 유일하게 한우를 베이스로 해서 만든다. 여 셰프에 따르면 “마블링이 두터운 한우는 볶았을 때 돼지고기 이상의 감칠맛을 내고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있기 때문”이란다. 전분을 넣지 않아 깔끔하게 마무리된 한우짜장면을 접시가 깨끗해지도록 싹싹 비웠다.

도림만으로도 ‘고급’이 차고 넘치지만 또 한 단계 품격의 상승을 체감하고 싶다면 맞은편 롯데월드타워 ‘시그니엘 클럽’으로 가시라. 107층에 위치한 이곳에선 일식 오마카세와 도림의 중식을 맛볼 수 있는데 한강은 물론 남산 서울타워 불빛까지 한눈에 보이는 특급 조망을 자랑한다. 단 시그니엘 입주민 또는 투숙객에 제한된 멤버십 레스토랑이라 회원과 동반할 때만 입장 가능하다. 가스불을 쓰지 않고 인덕션으로만 조리하게끔 설계가 돼 있어 전통적인 ‘불맛’을 변형한 모던 중식이 이채롭다.

도림 스타일을 대중적으로 재현하는 시중 레스토랑도 있다. 여경옥 셰프가 형 여경래(58) 홍보각 오너셰프와 의기투합해서 차린 ‘루이’ ‘수엔 190’ 등이다. 현재는 형 여경래 셰프가 총괄해서 경영 중이다. 루이나 수엔 모두 한우를 쓰진 않지만 깔끔담백한 소스로 짜장면 매니아들이 첫손에 꼽는 맛집들이다.

루이부터 시그니엘 클럽까지 재료와 서비스는 각양각색 천양지차. 각자 주머니 사정 따라, 그날그날 목적에 따라 선택하기 나름이다. 단 밑반찬으로 테이블에 깔리는 짜사이(자차이·榨菜) 무침은 모두 같은 걸 쓴다. 개인적으로 서울 중식당 중에 첫손으로 꼽는 새콤꼬들아삭한 맛이다. 언젠가 현 단장이 서울에 다시 온다면 그가 루이 짜장면도 먹어보길. 그리고 평등과 차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길.

글·사진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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