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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연 매출 50억원 회사 버리고 곤충에 빠진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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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라이프(7)

곤충에 빠진 남자가 있다. 혹자의 눈엔 징그럽기만 한 곤충이 귀엽기만 하단다. 덕분에 회사도 접었다. 연 매출 50억원을 올리던 회사였다. 직접 세운 회사라 애착이 컸지만, 더 늦기 전에 도전해야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김영세 용인곤충테마파크 대표(49) 얘기다.

김영세 용인곤충테마파크 대표 #반려곤충·식용곤충 외 곤충 부가가치 다양 #"곤충 플랫폼 키워나갈 것"

"실내건축 전문회사를 10년 이상 운영했어요. 2002년에 창업해 연 매출 50억원 이상인 중견 회사로 키웠죠. 사실 먹고살기 나쁘지 않았지만, 제 개인적으로 봤을 때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아버지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어요.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시골로 내려가 제2의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곤충이라는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어요."

전북 진안에서 나고 자란 김 대표는 고향을 떠났지만 막연하게 농촌생활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가끔 들른 고향에서 바라본 촌부인 아버지 뒷모습이 좋았다. '지금 하는 일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어느날  TV에서 곤충이 향후 세계 인류의 대체 식량으로 주목받을 거라는 보고서를 소개하는 걸 보고 '이거다' 싶었다.

김영세 용인곤충테마파크 대표(49) [사진 서지명]

김영세 용인곤충테마파크 대표(49) [사진 서지명]

그 길로 닥치는 대로 곤충에 관련한 자료를 찾아 나섰다. 무작정 농촌진흥청을 찾아가기도 했다. 정식 학교는 아니지만, 농업대학에 입학해 1년간 곤충을 공부했다. 공부할수록 새로운 세상이 보였고, 곤충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회사 운영과 병행하다 가능성을 확신하고 회사는 정리했다. 곤충이 가진 가능성은 무한했다. 많은 사람이 곤충을 혐오하고 피하기만 하지만, 사람과 자연에 유익한 곤충이 더 많았다. 곤충에서 파생되는 직업이며 산업 영역도 다양했다.

"모기가 태풍 속에서도 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모기는 해충이지만, 모기의 비행을 통해 항공우주산업이 발전할 수도 있어요. 요즘 관심이 높은 드론의 날개도 곤충의 날갯짓으로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식용곤충의 영역도 있죠. 이처럼 곤충이 산업 전반 모든 분야에 응용되고 접목될 수 있어요. 곤충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부가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김 대표가 체험학습장에서 곤충을 손바닥에 올려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지명]

김 대표가 체험학습장에서 곤충을 손바닥에 올려 설명하고 있다. [사진 서지명]

집에 작은 벌레만 나타나도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고 진절머리를 내던 아내와 도시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을 설득했다. 쉽지 않았지만 곤충에 관한 즉흥적인 호기심이 아닌, 우직한 열정을 보이는 모습에 가족들도 동의하고 힘을 보탰다.

다음으로 중요한 지역선정. 김 대표는 곤충은 작물을 키우는 일반적인 귀농과 달리 사람들과의 접근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강남에 중심점을 찍고 컴퍼스를 돌려 45~50㎞ 내외로 접근할 수 있는 곳을 보니 파주, 시흥, 남양주, 의왕, 용인 등이 물망에 올랐다. 고민 끝에 도농복합도시인 용인시로 낙점한 뒤 5000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했다.

좋은 취지와 목표로 뛰어들었지만 쉽지 않았다. 부지에 시설을 만들기 위한 허가를 받는 데만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모아 놓은 자금도 조금씩 바닥을 보여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하기도 수차례. 주변 사람들은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부동산에 투자했으면 월세 받으면 편히 살 텐데,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냐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그는 곤충이 창출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다.

용인곤충테마파크는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서지명]

용인곤충테마파크는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서지명]

현재는 작은 규모의 곤충 체험 학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더 다양한 곤충을 들이고 사람들이 체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곤충테마파크라는 이름에 걸맞은 곤충 콘텐트와 시설을 갖추기 위해 6월 오픈을 목표로 공사 중에 있다.

회사는 현재 아이들을 대상으로 곤충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곤충과 곤충 용품, 곤충 식량 등을 판매하며 수익을 올린다. 김 대표는 체험관에서 곤충 큐레이터로 활약 중이다. 곤충이라면 질색하는 어른들을 대신해 아이들에게 곤충을 소개하고 직접 체험하게 하는 일을 한다. 곤충을 소중히 다루면서 생명존중 사상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곤충에 관한 좋은 경험을 갖고 돌아가게 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지난해엔 연 매출 7000만원가량 올렸다.

"곤충은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아이템이에요.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폭력성이 낮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폭력적인 게임이나 자극적인 콘텐트에 노출되면서 '리셋증후군(컴퓨터가 오작동할 때 리셋(Reset)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리셋이 가능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에 빠진 아이들도 많아요. 작은 미물인 곤충을 접하고 키우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죠. 집중력과 관찰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용인곤충테마파크 체험학습장에서는 누에고치 실 뽑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서지명]

용인곤충테마파크 체험학습장에서는 누에고치 실 뽑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진 서지명]

그는 이 공간을 곤충과 곤충에 관한 콘텐트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곤충 전문 플랫폼으로 키워 나갈 예정이다. "단순하게 곤충을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곤충에 관해 학습하고 관련 연구가 이뤄지는 등 다양한 움직임이 이뤄질 거에요. 제가 그 전도사 역할을 하겠습니다."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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