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1)
90세에 새 삶을 찾아 나선 대한민국 1세대 여의사. 85세까지 직접 운전하며 병원을 출퇴근했다. 88세까지 진료하다 노인성 질환으로 활동이 힘들어지자 글쓰기에 도전, ‘90세의 꿈’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문인으로 등단했다. 근 100년 동안 한국의 역사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 웃음과 꿈을 잃지 않고 열정적으로 삶에 도전해 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85세까지 본인이 노인인 줄 몰랐다니 나이는 진정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편집자>
활기찬 40, 50대도 아니다. 한글 철자법도 제대로 모른다. 90이 넘은 늙은이다. 그런데 이 나이에 문화센터에 등록하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작가가 되려는 것도 아니요, 좋은 문장을 쓰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처음엔 그저 문화센터에 와서 젊은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매일 쌓여 작년엔 자식들 덕분에 책도 출판하고, 문인으로 등단했다. 얼마 전엔 잡지사에서 인터뷰해 가더니, 이젠 중앙일보에서 내 글을 연재하겠단다.
참 신기하고 의아했다. 아마도 90세를 넘긴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신기하고 재밌게 느껴지나 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병원도 그만두고, 무릎이 아파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게 돼 아무 할 일 없이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거야.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글로 써보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인 것 같았다.
나는 항상 바삐 움직여왔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태평한 성격, 항상 생활의 중심에 내가 있기를 원했기에 매일 매일 일에 매달려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살아왔다. 병원에 찾아오는 환자를 돌보며 딸 넷을 키웠다.
집안 식구를 먹이고 돌보는 것이 모두 내 책임인 양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삶이, 즐거움이, 아픔이, 고통이 무엇이냐는 철학적인 삶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없다. 그저 매일 매일을 당하면 당하는 대로 그때그때 고민하고 해결하면서 아주 단조롭게 태평하게 살아온 것 같다.
활기 넘치는 30, 40대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50, 60대부터는 나의 삶을 찾는답시고 여유만 생기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지금의 젊은이처럼 취향에 맞춰 또는 사업이나 경제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분야의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막연한 호기심과 내 삶에 대한 보상으로 여행사의 맞춰진 프로그램에 따라 미지의 세계를 보러 가는 것이 전부였다.
70, 80대에 접어들면서는 해외여행은 힘들어져 국내 방방곡곡을 누볐다. 하지만 이 역시도 그 지역의 역사나 특성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과일이나 나물이 나오는가?' '어떤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좋을까?' 하는 등의 아주 단순한 목적으로 그냥 그렇게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었다.
스트레스도 풀고 맛있는 것도 먹을 겸, 집을 떠나서 누리는 자유와 즐거움을 맛보면서 기차를 타곤 했다. 재미로 그렇게 여행을 즐기며 삶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늙어 그것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기도 쉽지 않고, 여행지에 가서 이곳저곳 돌아다보는 것도 힘들었다. 구경을 가려면 가까운 곳이라도 아이들 힘을 빌려야 해서 더더욱 어려웠다.
그렇다 보니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삶이 무료하고 서글퍼질 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을 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보는 것과 글을 쓰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거다! 문화센터 생각이 났고 89세에 용감하게 등록했다.
내가 문인이 되거나 좋을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지금 이대로의 내 생각과 경험을 가식 없이 써보는 것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하며 용기를 가져본다.
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heesunp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