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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산부인과 의사

[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 90세에 새 삶을 찾아 나선 대한민국 1세대 여의사. 85세까지 직접 운전하며 병원을 출퇴근했다. 88세까지 진료하다 노인성 질환으로 활동이 힘들어지자 글쓰기에 도전, ‘90세의 꿈’이라는 책을 출판하고 문인으로 등단했다. 근 100년 동안 한국의 역사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을 살면서 웃음과 꿈을 잃지 않고 열정적으로 삶에 도전해 온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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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흔이 넘었을 내 첫사랑, 소식이라도 들었으면

    이젠 늙어서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겠지? 북을 떠올리면 항상 생각나는 잊지 못할 오빠. 몇 사람이 힘을 합쳐 겨우 들어온 학생은 그 비좁은 바닥의 빈 곳을 찾아 앉더니 연신 고맙다고 절을 했다. 그 수영 바다와 주변의 우리 집 논밭을 관리해주는 집의 둘째 아들이 오빠였다.

    2018.08.06 01:00

  • 매주 일요일 커피숍서 만나 수다 떠는 ‘no人’친구

    나이가 90이 넘으니 친구들 대부분이 세상을 떠났거나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 가끔이라도 만나는 친구가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 그중 매주 일요일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꼭 만나는 친구가 있다. 오늘도 우리 두 노인은 매주 만나는 현대 백화점 커피숍의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2018.07.30 15:00

  • 집 한 채 값 빚지고 죽은 친구가 꿈에 나타나 한 말

    그녀의 남편이 일본에서 철쭉을 수입하면서 돈이 필요하다기에 다른 친구의 돈까지 더해서 꽤 큰돈을 건넸다. 죽은 친구에 대한 서글픔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자그마치 집 한 채 값인 그 돈 생각이 떠올랐으니 인간은 참 치사한 동물이다. 나는 너무 놀라 친구의 영정 앞에서 "OO야 이 돈 받지 않을 거야. 이 돈으로 너의

    2018.07.23 07:00

  • 먼저 간 남편 따라 잠든 탁상시계에 부치는 글

    이 시계만은 학생들의 정성이 담긴 선물이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먼저 간 남편의 추억과 함께 내 곁에서 가만히 잠자고 있다. 순수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선물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 잊을 수 없는 기념품이 된다.

    2018.07.16 15:00

  • 여름철 달아난 밥맛 돌아오게 했던 '모젓'의 추억

    절인 대구 살을 발라서 깨끗하게 씻고 마늘과 고운 고춧가루, 참기름을 듬뿍 넣어 조물조물 무치고 깨소금을 뿌린다. 여름철 쌀뜨물에 절인 대구 뽈, 고니, 알을 무와 같이 넣고 끓인 시원한 국과 입안에서 살살 녹던 이 모젓 한 접시를 함께 먹으면 더위에 달아났던 밥맛도 돌아왔다. 그것을 소금에 저려두었다가 살을 발

    2018.07.09 07:00

  • 아이가 오면 소아과, 산모가 오면 산부인과였던 동네병원

    아버지가 신혼 생활을 위해 사 주신 일본식 건물이었는데 길 쪽으로 작은 병원을 만들 공간이 있어 소아과를 개업했다. 생활이 어려워져 돈을 벌기 위해 산부인과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해부학 수업은 큰 도움이 됐다. 지금과 같이 세분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큰 의료사고 없이 잘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의과대학 초기의 해

    2018.07.02 07:01

  • 2차 세계대전과 6·25 겪은 기막힌 세대 “전쟁만은 제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을 겪은 기막힌 세대다. 우리는 태평양전쟁 때 누구에 의해 어떻게 지배되는지도 모르고 남의 나라를 위해 싸웠다. 태평양전쟁이 끝나 해방됐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가 대한민국이란 독립국이며, 일본이 침입국으로 우리 민족을 힘들게 한 적국임을 알았고 ‘가나다라’가 우리글임을 알

    2018.06.25 07:01

  • 전란통 의대 시절 내 노트 빌린 남학생 "네 덕에 의사됐어"

    모교인 서울여자의과대학(고려대 의과대학의 전신)의 학생들과 서울대 의과대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시작한 것이 남녀공학이 됐다. 가까이 앉아 이야기도 하고 폭넓은 토론도 하며 얻는 것이 여자 친구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내 노트를 빌려달라고 했다.

    2018.06.18 07:02

  • 사랑을 구하며 논했던 동경대학 학생들이 쓴 화장실 낙서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사랑이 없음을 어떻게 하나/ 사랑은 있다 주라’라는 글인데, 한 줄 한 줄 쓴 사람이 다르다고 했다.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첫 줄 학생은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을 찾지 못해 고민 중인 자기의 기막힌 심정을 썼다. 둘째 줄 학생이 그 글귀를 보고 자기가 구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

    2018.06.11 07:03

  • 여고시절 터진 2차 대전, 온종일 군인 허리띠 만들며

    흰 천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바늘 한 바늘 매듭을 지어 정성껏 수놓아 센닌바리(1000명이 만드는 허리띠)라는 허리띠를 만들기도 했다. 해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나라가 독립국인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차차 우리말을 한글로 쓸 수 있게 됐지만, 맞춤법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 지금도 소리 나는 대로

    2018.06.04 07:00

  • 빌려준 돈 못 받을 때 필요한 마음가짐

    그럴 때 꼭 필요한 것이 내 마음가짐이 아닐까? 불행한 일도 행복한 일도 순간이다. 특히 돈에 대한 마음가짐을 생각해본다. 돈에 대한 마음가짐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든다.

    2018.05.28 07:00

  • 어린 시절 이모들과 즐겼던 간식 '꼼밥' 먹고 싶다

    집 마당이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뒷산에 돌을 쌓아서 만든 즉석 화로로 작은 냄비에 해 먹는 밥이 꼼밥이다. 외할머니댁은 부산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형 농촌인 모라에 있었다. 꼼밥과 함께 앞 밭에 있는 무를 하나 뽑아 씻어 먹고 나서 그 옆 밭의 딸기가 두렁 밖으로 빨간 얼굴을 내밀고 있으면 그것도 살짝 몇 알 따와서

    2018.05.21 07:01

  • 아버지 재산 빼앗은 첩 아들 2명, 탕진 후 지금은···

    변제 기한이 돼도 돈을 갚지 못하자 혼사 이야기 중인 우리 할아버지와 의논한 것이 일의 발단이었다. 이것이 화근이 돼 양가 사이가 나빠졌지만, 외할아버지는 어머니를 아무 준비 없이 시집 보내면서 그 집에 가서 아들을 낳아 재산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아버지의 재산을 그

    2018.05.15 07:03

  • 부산 깡패를 주먹 한방으로 굴복시킨 아버지

    90세가 넘은 할머니인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어린 나를 사랑한 부모님이 건강하게 살아계신 때가 있었다. 특히나 소학교 시절의 아버지는 태산같이 크고 든든한 모습으로 아직도 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어릴 때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1학년 담임 선생이 항상 자기 무릎에 나를 앉혀놓고 예뻐했다는데 전

    2018.05.12 11:02

  • 밤하늘 수놓은 화려한 불꽃에 혼을 빼앗기다

    딸이 광안대교와 동백섬이 한눈에 보이는 해운대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집에 앉아서 불꽃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 나이와 괴로움과 외로움 같은 모든 나쁜 생각은 없고 오로지 환희와 즐거움과 웃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불꽃을 볼 때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오로지 그 순간에 타오르는 아름다운 불꽃에 혼을 빼앗

    2018.05.05 15:00

  • 부친의 눈물겨운 구명운동으로 지옥같은 옥살이 탈출

    공산주의나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도 없는 내가 형무소로 가게 된 이유는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6·25 이후의 국내 사정은 공산주의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공산주의에 관한 책만 읽어도(심지어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경찰서에 잡혀가 바로 형무소로 이송될 때였다. 나는 책 한권 읽어보지도 못한 채 친구

    2018.04.28 15:02

  •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연…전쟁 때 날 살려준 사람들

    내가 인민군과 피난민 속에 섞여 지내다가 부모님이 사는 부산에 가게 된 계기가 거기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전세가 불리해진 인민군과 피난민에 섞여 산으로 후퇴하면서 소백산맥 줄기를 타고 그곳까지 내려갔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인이요, 감사하고 또 감사한 사람들이다.

    2018.04.21 11:01

  • 나는 오늘도 걷고 또 내일도 걸어갈 것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도 걸어가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색·공포·맛·감각이 있는 삶 속에 환희가 있고, 즐거움이 있고, 무서움이 있고, 깨끗함이 있고, 더러움이 있고, 시기심이 있고, 용서함이 있고, 추억이 있고, 잊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것이 없는 조용한 무미건조한 세계가 우리 미래

    2018.04.14 11:02

  • 6·25 때 사상범 누명쓰고 끌려간 소년원이 인생의 전환점

    어둠이 짙게 깔릴 때 우리는 맑은 하늘을 생각한다. 성인인 내가 10대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있는 소년원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재력과 유명세 덕이었다. 그러나 6·25 전쟁 속 죽음의 문턱에서 갖은 고생 끝에 살아남아 집에 돌아오니 나는 이미 사상범이 되어 있었다.

    2018.04.07 11:00

  • 아흔 넘도록 바뀌지 않은 생각 "사랑은 생활이다"

    "야 사랑이 뭐니?" 남자 인턴이 던진 말에 모두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마음이지" "무지개지" "꿈이지"하며 각자의 생각을 털어놓을 때 나는 "사랑은 생활"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사랑은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범죄자의 마음속에도 사랑이 있고, 자기가 가진 마음속의 사랑을 주위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

    2018.03.31 11:00

  • 하나둘 지워지고 있는 낡은 전화번호 수첩 속 이름들

    엄마 뱃속에서 생명이 자라 태아가 되고, 이 세상에 태어나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고, 마침내 늙어 없어지니 공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무한한 에너지를 갖고 마음속에 사랑을 품은 이 육체는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유다. 참 고마운 것은 신이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낼 때 욕심, 강렬한 투쟁심과 노력하는 힘을 마음속에

    2018.03.24 11:00

  • 나이 들수록 혼밥·혼술 즐길 수 있어야 행복해진다

    남자는 보살핌을 받는 쪽이고 여자는 보살펴 주어야 하는 쪽이니 졸혼은 여자의 몫이 아닌가? 여자는 갱년기가 지나고 아이들이 제각기 자기의 생활을 찾아 떠나고 나면, 내 임무가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의 여자(엄마)는 많은 희생과 노동을 강요당하면서, 결혼하면 생활 자체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2018.03.17 01:02

  • 여든 앞두고 결행한 꽃보다 할매 7인의 온천 정복기

    함께 의과대학을 다닌 친구들로, 졸업하고 몇 명은 미국으로 대구로 부산으로, 또 몇 명은 서울로 흩어져 제각각 개업을 했다. 다시 모인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각자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은퇴한 친구들 대부분은 옛날 왕성하게 활동하던 때와는 달

    2018.03.10 01:03

  • [더,오래] 아흔 넘어서도 사랑하고 싶다

    여전히 잘 보이고 싶고, 예쁜 것을 입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경치 좋은 것을 보고 즐거운 곳에 가고 싶고, 영화나 연극도 보고 싶다. 늙어 눈이 맑지 않아도, 귀는 덜 들려도, 맛이 옛날 같지 않아도, 마음은 항상 변함없이 보고, 듣고, 맛보고, 싶은 것을 몰랐다. 자식에게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있듯이 변함없

    2018.03.03 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