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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예남성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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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경희 기자 중앙일보 P디렉터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다큐 ‘우리는 썰매를 탄다’ 시사회 전엔 몰랐다. 장애인 아이스하키가 2012년 우리나라 아이스하키 사상 최초로 국제대회 은메달을 땄다는 걸. 명색이 국가대표인데 자비로 출전할 만큼 열악했다는 것도. 김경만 감독이 3년간 작업해 2014년 초 완성한 영화는 평창 패럴림픽 개막을 앞둔 다음달 7일에야 간신히 개봉한다. 눈부신 승리를 거두고 돌아왔지만 인천공항에서 선수단을 맞이한 건 몇몇 가족뿐이었다. 김 감독은 “장애·비장애 통틀어 은메달은 최초라 (환영 인파를) 기대했는데 기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영화를 볼 때보다 그 대목에서 더 눈물이 솟았다. 기자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미투(#MeToo) 행렬을 지켜보며 든 죄책감이 오버랩됐다.

문인들이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을 묶어 지난해 『참고문헌없음』이라는 출판 펀딩을 했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그에 참여한 이혜미 시인은 등단 후 첫 모임에서 들은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널 먹어 버렸을 텐데”란 말을 비롯한 희롱과 추행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 시인은 2006년 스무 살에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문제의 첫 모임은 시상식 뒤풀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 나는 선배를 도와 시상식과 뒤풀이를 준비했다. 나는 최소한 방조자였던 셈이다.

기자는 출입처의 문화에 동화되기 쉽다. 요즘 도마에 오른 원로 시인이 중견 시인의 뺨을 수차례 때리는 걸 코앞에서 본 적도 있지만 ‘문인들 술자리는 원래 그런가 보다’ 여겼지 기사 쓸 생각은 못했다. 어쩌면 언론계의 문화도 오십보백보라 초현실 같은 풍경에 눈감았는지 모른다. 입사 초기, 부서 회식으로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 가는 문화가 있었다. 충격적이었지만 이내 적응했다. 동료가 아닌 여자로 보고 배제하는 게 더 두려워서였다. 시절이 점차 바뀌었음에도 끝끝내 노래방 도우미를 부르던 선배가 있었다. 오래전 퇴직한 그 선배의 본인상 부음을 지난해 듣고도 문상을 가지 않았다. 소심한 복수였다.

그때 침묵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나 혼자 살겠다고 명예남성 코스프레를 한 건 아닌가. 기자가 ‘기레기’로 전락한 건 언론계 내부에 오랜 침묵이 쌓인 탓 아닐까. 가슴앓이하던 차에 연희단거리패에서 7년 머물렀다는 연극인의 미투 폭로 글을 봤다. 자신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며 후배들에게 사과하는 대목에서 찡했다. 그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어서다. 진짜 사과해야 할 사람은 “법대로”를 외치고, 미투가 이슈가 되니 언론들은 뒤늦게 자극적 보도로 2차 가해를 하는 모습에 아찔하다. 수치심은 더는 피해자 몫이어선 안 된다.

이경희 디지털콘텐트랩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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