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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며느리 노릇 때려 칠 '며느리 사표'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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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욱의 심야병원(12)

나는 이 음악을 슬픈 사람들을 위해서 연주하곤 했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이곡을 이렇게 표현한다.

인대에 염증 생기는 '과사용증후군' #명절 후 호소하는 며느리 많아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2번 중 사라방드(Sarabande)를 슬픈 사람들을 위해서 연주한 곡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유재욱]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 2번 중 사라방드(Sarabande)를 슬픈 사람들을 위해서 연주한 곡이라고 표현했다. [사진 유재욱]

오늘의 연주곡은 바흐 무반주 첼로조곡 2번 중 사라방드(Sarabande)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로스트로포비치는 서베를린 벽 아래 홀로 앉아 이곡을 연주했다.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추도음악회 때도 이곡이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로스트로포비치는 청중들에게 손뼉을 치지 못하게 한다. 연주가 끝나면 조용한 가운데 아주 조용히 일어나서 천천히 무대에서 떠나간다.

“선생님, 팔에 깁스를 해주면 안 되나요? 내가 맏며느리인데, 이번 명절에 집안 식구들이 다를 모이니 내 팔이 견뎌낼까 걱정이네요.”

허리와 무릎이 아파서 자주 오시는 환자분이 내 눈치를 보면서 꺼낸 이야기다.

“원장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는데, 보시다시피 겉으로 보기에는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이 생겨서... 에휴~”
“아프다고 하면 시댁 식구들이 꾀병 부린다고 해서 눈치 보인다니까요.”
“원장님이 나 많이 아프다고 진단서를 떼 주던지, 아니면 팔에다가 큼지막한 깁스를 해주던지. 제발 한 번만 부탁드려요.”

명절 때마다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이 환자뿐만 아니라 여러 환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내가 재활의학과 의사로서 단언컨대, 이 분이 일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명절이 끝난 후에 병원에 오는 며느리들을 보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다. 팔, 다리, 허리, 어깨까지 안 아픈 데가 없다. 이걸 시어머니와 남편들이 알아야 한다. 집안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명절에 맏며느리가 감당해야 할 일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대와 근육이 받아낼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하는 부하가 걸렸을 때 염증이 생기는 질병인 '과사용증후군' [사진 freepik]

인대와 근육이 받아낼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하는 부하가 걸렸을 때 염증이 생기는 질병인 '과사용증후군' [사진 freepik]

‘과사용증후군’이라고 들어봤는가? 인대와 근육이 받아낼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하는 부하가 걸렸을 때, 인대에 염증이 생기는 질병을 과사용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병은 아주 오랫동안 과도하게 써야 생기는 병이지만, 명절이 지나고 오는 많은 며느리들은 불과 며칠 만에 과사용증후군을 만들어서 온다.

‘내가 며느리일 적에는 이보다 더 많은 것도 혼자서 다 했다’ 하는 시어머니도 있겠지만, 요즘은 며느리도 나이가 적지 않다. 위 사례의 환자만 해도 60대 초반이다. 예전 같으면 시어머니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나이지만 아직도 ‘현역 며느리’로 뛰고 있다. 이 정도 나이면 대부분의 여성은 이미 관절염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에 관절염 증상도 더 심해지게 마련이다. 또 여성 갱년기가 지나면서 호르몬 수치도 떨어져서 조금만 일해도 쉬이 병이 생기기도 한다.

유재욱의 한마디

명절에 앉아서 일을 하거나 한 자세로 계속 있으면 근육과 관절이 상하기 때문에 한 번씩 일어나서 자세를 바꾸는 것이 좋다. [중앙포토]

명절에 앉아서 일을 하거나 한 자세로 계속 있으면 근육과 관절이 상하기 때문에 한 번씩 일어나서 자세를 바꾸는 것이 좋다. [중앙포토]

이번 명절에도 아픈 팔, 아픈 허리로 일해야만 했던 많은 며느리가 있었을 것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서 몇 가지만 당부드린다.

일단 좌식은 피하자. 방바닥에 앉아서 전을 부치면 허리, 골반 망가진다. 아직도 쪼그리고 앉아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무릎관절 다 나간다.

무엇보다 가장 안 좋은 자세는 부동자세(不動姿勢)다. 한 자세로 계속 있으면 근육도 굳어지고, 관절도 상한다. 어떤 자세든 30분에 한 번씩은 일어나서 기지개라도 피는 것이 좋다.

얼마 전 ‘며느리 사표’를 제출하고 당당하게 시월드를 퇴사한 한 주부의 기사를 보았다. 결혼 후 8년 동안 시댁살이를 하고, 분가해서도 주말마다 시댁을 찾았다 한다. 집안의 대소사를 주관해왔던 이 맏며느리는, 결혼 24년 만에 시부모님께 ‘며느리 사표’를 제출하고 자기 삶을 찾았다. 얼마나 힘들었고, 또 고생하는 것을 오죽이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그랬겠는가?

결혼 24년 만에 시부모님께 '며느리 사표'를 제출한 며느리 [사진 유재욱]

결혼 24년 만에 시부모님께 '며느리 사표'를 제출한 며느리 [사진 유재욱]

환자의 팔에 큼지막한 깁스를 한 뒤, 그 팔을 시월드 어르신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당신의 며느리가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고….

유재욱 재활의학과 의사 artsmed@naver.com

비트코인의 탄생과 정체를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소설. 금~일 주말동안 매일 1회분 중앙일보 더,오래에서 연재합니다. 웹소설 비트코인 사이트 (http:www.joongang.co.kr/issueSeries/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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