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노인정 ‘설 선물’이 이웃 ‘주먹다짐’ 부른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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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폭행 일러스트. [중앙포토]

설 연휴를 이틀 앞둔 13일 오후 6시 반 서울 동작경찰서. 이모(84·여)씨와 아들 정모(54)씨가 굳은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방금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정씨는 어머니 이씨에게 “나 참 황당해서. 그 할머니가 전치 2주짜리 진단서를 내면서 내가 폭행을 했다고 고소했대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들은 이씨는 “너는 안 때렸잖아. 그 여자가 네 멱살을 잡고 얼굴을 때려서 네 안경다리가 부서진 거잖아”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과 동작경찰서의 설명에 따르면 사건은 이달 초 서울 동작구의 한 노인정에서 나눠 준 ‘설 선물’ 때문에 발생했다. 이씨가 평소 다니는 노인정은 명절 때마다 소속 노인들에게 소고기 두 덩이씩을 선물로 나눠준다. 그런데 이번에 받은 고기 중 일부가 검게 변색한 것을 발견한 이씨는 노인정에 찾아가 항의했다. 노인정의 부회장인 안모씨가 “거짓말하지 말라. 다른 고기를 들고 온 것 아니냐. 평소 동네 교회에서도 거짓말을 자주 하지 않냐”고 하면서 다툼이 시작됐다.

 감정이 상한 양측이 서로 밀치며 몸싸움을 할 기세가 보이자 옆에 있던 이씨의 아들 정씨가 말린다고 끼어들면서, 결국 ‘설 선물’이 오가는 따듯한 명절 풍경은 이웃간 ‘주먹다짐’으로 변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난 뒤 안씨는 “정씨가 나를 때렸다”며 경찰에 고소했다. 이씨는 “말리긴 했지만 나는 때리지 않았다. 오히려 안씨가 내 멱살을 잡고 밀치기도 해 안경다리가 부러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억울해서 나도 병원에 가서 폭행당했다는 진단서를 받아야겠다”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쌍방 폭행으로 보고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우영·정용환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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