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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한미 조율, 한 손엔 北 설득…文 ‘평창 구상’ 본게임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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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구상’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꿰뚫는 큰 줄기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염두에 둔 평창 구상의 골자는 북한의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남북 대화와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선순환을 끌어내는 것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등의 방한으로 형성된 남북 간 화해 분위기는 문 대통령의 평창 구상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는 첫 단계로의 진입일 뿐이다. 평창 구상 완성을 위한 고난도 미션은 이제 시작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북미대화 시기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북미대화 시기는 북한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PA=연합뉴스]

 관건은 문 대통령이 어렵게 운전대를 잡은 자동차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모두 태우는 것이다. 청와대는 “미국의 태도와 입장이 우리와 많이 가까워지고 있다”(13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고 했다. 실제 미국이 “북·미 대화의 시기는 북한에 달려 있다”(12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는 입장을 보이고, 김정은이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하는 등(12일 북한 대표단 방한 결과 보고 뒤) 기류 변화도 감지된다.

 하지만 핵과 관련한 북·미 간 근본적인 입장 차는 여전하다. 미국이 내건 조건은 ▶북한과 탐색적 대화를 할 수도 있지만 본협상을 시작하려면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 ▶대화 자체에 대한 보상은 없다 ▶대화 가능성과 별개로 최고의 압박을 계속한다 등으로 요약된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14일 미 재무부가 북한의 불법 무기 프로그램과 연계된 혐의로 라트비아의 민간은행이 미국 금융시스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재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입장에는 과거 대화에 집중하다 북한에 속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렸다.

 북한은 ▶이미 핵보유국으로서 ▶핵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일은 없으며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 위치에서 군축 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는 12일 “안보리 제재는 국제법 위반이므로 적법성을 검증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남북 대화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면서도 제재망을 흐트러뜨리기 위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지금 상태로는 접점을 찾기 힘들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해빙 분위기가 ‘임시 평화’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를 돌아보면 남북 관계는 연속극이 아니라 단막극에 가깝다. ‘평창편’의 주연은 김여정과 현송월, 감독은 김정은이었지만 ‘평창 이후편’의 시나리오나 감독과 주연은 전혀 알 수 없다”고 비유했다.

 당장 문 대통령이 운전하는 한반도 자동차가 전진할지 후진할지를 판가름할 큰 고비가 코앞이다. 3월25일까지 연기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과 만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더 이상의 연기나 축소는 없다는 단호한 입장으로, 4월 초로 날짜를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연합훈련을 올림픽 직후 곧바로 실시하는지를 북한의 진정성뿐 아니라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확인하는 리트머스처럼 인식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북한은 남북 접촉이 이뤄지는 중에도 연합훈련 시 기존의 긴장 국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정부로서는 북한이 남북 관계와 연합훈련을 연계해 한국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상황이 최악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연합훈련 시점이 오기 전 발 빠르게 움직여 북·미 관계 변화를 위한 작은 단초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향후 한반도 정세는 연합훈련 재개 전 북·미 간에 탐색적 대화라도 이뤄질지 여부에 달려 있다. 한·미 간에는 일단 탐색적 대화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본격적으로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과제”라며 “우리의 진정성, 미국의 강한 압박과 군사 옵션 카드 등이 북한에 대한 협상 자산인 만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핵과 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감안하면 1, 2차 남북 정상회담 때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수 교수는 “평창 동력을 이어가려면 현상태에서 상상 가능한 방법으로는 안 된다. 지금처럼 어려운 국면에서 전향적으로 돌파구를 뚫으려면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북한의 선택에 향후 국면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국제 공조 체제를 통한 비핵화 달성이라는 원칙을 지켜나가야 한다. 이를 망각하고 ‘북·미 대화만 시작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북한에 이용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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