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복지병폐가 부른 프랑스 대학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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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번 시위는 외견상으로 젊은 세대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과잉복지가 낳은 병폐가 곪아 터진 것이다.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달리 프랑스는 근로를 국민의 권리로 간주한다. 일자리 찾아주는 것은 정부의 의무로 여겼다. 마음에 안 드는 직장을 거부할 수 있고, 실업자는 두둑한 실업수당을 받는 게 제도화돼 있다. 이런 시스템은 경제가 잘나갈 때면 별 탈없이 굴러갈 수 있다. 그러나 국제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제가 저성장에 빠지면 경직된 고용제도와 과잉복지는 족쇄로 작용한다. 프랑스 정부의 CPE 도입도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복지와 고용시스템은 한번 혜택을 올리게 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이 함부로 선심 쓸 대상이 아니다. 이미 기득권으로 굳어진 혜택을 누가 쉽게 포기하겠는가. 프랑스같이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지면 대응하기도 고약하다. "자기들은 다 누려놓고 왜 우리 세대에겐 고통을 강요하느냐"는 젊은 세대의 항변을 공권력으로 누르기도 어렵다.

프랑스 시위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4월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비정규직 법안이나 정부가 손질을 검토 중인 국민연금개혁도 본질은 마찬가지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청년층 반발을 무마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쉽지 않다. 이런데도 저소득층 긴급복지 지원 등 선심성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17대 국회 들어 의원발의 법안 3000여 건을 시행하려면 매년 138조원이 들 판이라고 밝혔다. 버는 데는 관심이 없고 쓰는 데만 관심이 있으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