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한국어로 강의할 수 있어 신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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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세상에 폭로했던 권인숙(權仁淑.39)씨가 9년에 걸친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 명지대 강단에 섰다. 權씨는 지난달 25일부터 명지대 교육학습개발원 교수로 발령받아, 서울 남가좌동 캠퍼스와 용인 캠퍼스에서 각각 '여성과 현대사회'와 '결혼과 가족'이라는 여성학 두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이후 노동인권회관을 설립하는 등 노동운동을 했던 權씨는 94년 여성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權씨는 클라크대에서 '군사화된 여성 의식과 문화'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지난해 8월부터 사우스 플로리다대에서 여성학 교수로 재직해 왔다.

지난해 12월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피해자에서 여성학 교수로 탈바꿈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선택'을 국내에서 출간하기도 했던 權씨는 "오랜 미국생활을 정리하게 된 데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이유도 작용했고, 한국에서 여성학자로서 활동하고 싶은 욕심도 컸다"고 말했다.

9년 전 '노동운동가'와 '민주투사'라는 이름을 뒤로 한 채 돌연 미국행을 결심한 데 대해서는 "사실 여성학은 단순한 선택이라기보다는 터질 것 같은 머리를 수습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고 고백했다.

"결혼생활.사회생활에서 남녀가 왜 이렇게 달라야 하는지, 왜 여성문제를 얘기하면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하고 인격적으로 뭔가 결핍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여성과 관련해 내가 부당함을 느낀다면 왜 냉소당하고 조롱당하는 느낌인지 항상 의문이었다"는 그는 "결국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고 덧붙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미국 생활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쉽게 넘을 수 없는 언어장벽 속에서 혼자서 딸(초등학교 5년)을 키워야 했던 세월이 결코 녹녹치는 않았다는 게 權씨의 회고다. 하지만 權씨는 "그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버텨냈던 미국 생활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최근 국내 정치상황이나 노동.인권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해 "외국 생활을 오래 해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다"면서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사회변혁에 큰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라고만 대답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도 여성학이 많이 발전하고 있다"며 "지역주의가 여성문제에 미친 영향에 대해 개인적으로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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