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잃은 소설가에서 북핵 탈출구 상상해 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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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송호근. [뉴스1]

송호근. [뉴스1]

지난해 장편 『강화도』를 출간해 소설가로 데뷔한 서울대 송호근(62·사진) 사회학과 교수가 두 번째 장편 『다시, 빛 속으로』(나남)를 냈다. 차가운 사회학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국적 근대’의 특수성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소설 기획이다.

송호근 두 번째 소설 『…빛 속으로』

『강화도』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담판 지었던 19세기 유장(儒將) 신헌(1811~1888)의 활약을 통해 위기의 구한말을 재현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해방 직후로 시기를 당겼다.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문학상에 근접했던 탁월한 소설가였으나 해방 직후 북한을 택해 인민군 종군기자로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비운의 작가 김사량(1914~50)이 주인공이다.

송 교수는 12일 간담회에서 “김사량의 아쿠타가와상 후보작이었던 『빛 속에서』에는 박경리 소설의 어떤 인물, 김승옥의 감각이 두루 보인다”고 했다. 물론 후대 작가인 박경리·김승옥이 김사량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작가가 반도인이라는 이유로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빛 속에서』는 일본 체제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의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으로 추천됐다.

송 교수는 “김사량은 국가와 민족적 정체성 상실, 그에 따른 작가의 정체성 혼란을 온몸으로 겪고 써낸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고뇌를 일제 치하에서 일본어로 써야 했다. ‘이중어 글쓰기’의 괴로움이다. “10년 전 교토에서 김사량의 흔적을 확인하고는 20대 중반의 청년이 제국주의 종주국의 심장부에서 이런 작품을 썼구나 하는 생각에 슬프고 비장했다”고 했다.

김사량은 1945년 2월 조선학도병 위문단원으로 노천명 등과 함게 중국을 찾는다. 하지만 곧 탈출을 감행해 조선의용군에 합류했다가 해방 후 고향 평양으로 돌아간다. 베이징에서 평양까지 두 달에 걸쳐 걸어간 귀향기가 국내에도 출간돼 있는 『노마만리』다. 이때만 해도 김사량은 사회주의 이념에 물들지 않는 상태였다.

송 교수는 “『노마만리』와 한국전쟁 종군기 사이의 거리는 어마어마하다”고 했다. 순수예술과 예술을 정치에 종속시켜 무기화하는 이념예술과의 차이다. 전시 선전문학을 쓸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의 내면이 과연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번 소설의 출발점이었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김사량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바탕이 사라진 시대에 그걸 만들어보고자 했다. 원점과도 같은 그 시절을 살펴보면, 현재 북핵 위기의 출구를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핵 문제는 핵으로 풀 수 없다. 결국 문화적, 미학적 상상력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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