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사전 협의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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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19일 "실업고 특별전형은 현재 정원 외 3%며 이를 정원 내의 10%까지 늘리겠다는 열린우리당의 방안은 사전에 실무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내신성적 비중을 높이는 2008학년도 새 대입을 앞두고 있어 특별전형 확대를 논의할 시기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주무 부처와도 협의하지 않은 채 현실성 없는 정책을 마구잡이로 발표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일선 대학들은 "대학 정원을 가지고 실업고생에게 선물 주듯 하고 있다"면서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

◆ 현실성 논란=지난해 고교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은 82%다. 구체적으로는 일반계가 88%, 실업계는 67%였다. 이는 선진국인 미국(63%)이나 일본(49%)에 비해 훨씬 높다. 반면 실업고의 취업률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이 때문에 실업계 고교가 원래 취지대로 중간층의 기술인력을 육성하지 못한 채 대학 진학을 위해 '일반 학교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입시에 치중해 실제로 기술교육을 받고 싶은 학생에게도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우리당은 "실업계 고교생을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더 많이 들어갈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현실과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건 이 때문이다.

법적인 논란도 가능하다. 정원 내 특별전형으로 실업고생 10%를 뽑을 경우 일반 고교에 간 학생이 그만큼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특별전형으로 인해 낙방한 일반고생으로부터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교육부는 이미 2004년 실업고 활성화를 위해 정원 외 3%를 특별전형으로 뽑으라는 지침을 내렸지만 이 역시 대부분의 대학이 무시하는 상황이다.

서울대 이종섭 입학처장은 "매년 정원이 줄어드는데 실업고생 특별전형을 확대하면 특혜 시비가 일어날 것"이라며 "특별전형을 노리고 편법으로 실업고에 진학하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김영수 입학처장은 "여당이 공정 경쟁의 원칙을 어기고 편법을 조장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수혜 대상자인 실업고도 시큰둥하다. 수도전기공고 김창배 교장은 "정원 내 10%는 고사하고 정원 외 3%만 지켜줘도 좋겠다"고 말했다.

◆ 탁상행정의 산물인가=실업고 특별전형 확대 정책이 발표된 배경 논란도 많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이은영 제6정조위원장 등은 15일 오전 강서구 경복여자정보산업고를 방문해 학부모.학생.교사들과 '도시락 간담회'를 가졌다. 이때 한 학부모가 "실업고생의 사기 진작을 위해 대학 특별전형을 확대해 달라"고 건의했다. 정 의장 등은 "검토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열린우리당은 하루 뒤인 16일 실업고 특별전형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부모 건의가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정책이 나올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이 위원장은 또 16일의 정책의원총회에서 "교육부와도 실무 차원에서 협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이 어떤 논리에 따라 특별전형 10%안을 발표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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