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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탈북자 출신 황보영 “북 선수들 날 겨냥해 퍽 날리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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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2003년 아오모리 겨울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로 출전한 탈북자 출신 황보영(사진 가운데). 당시 반가운 마음으로 경기에 참가했던 황보영은 북한 선수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했다. [중앙포토]

2003년 아오모리 겨울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로 출전한 탈북자 출신 황보영(사진 가운데). 당시 반가운 마음으로 경기에 참가했던 황보영은 북한 선수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했다. [중앙포토]

2016년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2’.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이 2003년 일본 아오모리 겨울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남북대결을 벌였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는 탈북한 뒤 한국대표가 된 리지원(수애 분)이 북한선수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국가대표2’ 실제 모델 인터뷰 #2003년 남북대결 죽을 것 같았다 #북한 친구 주려고 속옷 사 갔지만 #끝난 뒤 악수도 외면하고 지나가 #단일팀 북 선수들 생각보다 잘 조화 #몸으로 부딪히는 ‘몸빵’ 주저 말아야

영화속 주인공 리지원의 실제인물이 현재 국내 아이스하키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으로 한국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황보 영(39·고양시 슬레지하키 감독)씨다.

1997년 가족들과 함께 탈북한 그는 2000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여자아이스하키 대표로 활약했다. 운명의 장난처럼 황보 영은 2003년 아오모리 아시안게임에서 태극기를 달고 북한과 맞대결을 벌였다. 중앙일보는 최근 황보씨와 단독 인터뷰를 통해 남북단일팀 구성을 바라보는 그의 심경을 들어봤다.

영화 ‘국가대표2’에서 탈북자 리지원을 연기했던 배우 수애. 황보영이 실제 모델이다. [중앙포토]

영화 ‘국가대표2’에서 탈북자 리지원을 연기했던 배우 수애. 황보영이 실제 모델이다. [중앙포토]

평창올림픽 단일팀이 구성됐는데.
“한국대표팀에 친한 후배들이 몇 명 있다. 처음엔 남북한 선수들이 서먹서먹했다고 들었다. 한국선수들은 구역을 침범당한 셈 아닌가. 북한선수들도 갑자기 내려와 처음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합동훈련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북한 선수들이 이젠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더라.”
탈북자 출신으로 한국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약한 황보영. 고양 장애인아이스하키 감독을 맡고 있는 그가 2일 경기도 고양 어울림 누리 빙상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고양=변선구 기자

탈북자 출신으로 한국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약한 황보영. 고양 장애인아이스하키 감독을 맡고 있는 그가 2일 경기도 고양 어울림 누리 빙상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고양=변선구 기자

지난 4일 남북단일팀과 세계 5위 스웨덴의 평가전을 봤나. (단일팀이 1-3으로 졌다.)
“북한선수들이 생각보단 잘 녹아들었다. 민폐를 끼치는 수준은 아니었다. 세라 머리 단일팀 감독이 ‘미친소’처럼 뛰어다니는 북한 선수 몇몇을 좋게 평가하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북한의 한 선수는 스케이트를 타는 게 엉성했다. 머리 감독이 평창올림픽에서는 북한선수 4명 정도를 뛰게 하고, 8명은 안쓸지도 모르겠다. 남북이 단일팀 게임엔트리 22명 중 북한선수 3명 이상을 포함시키기로 합의해서, 우리 선수 몇 명은 아예 ‘무장’ 을 입지도 못했다.”
한국은 세계 22위, 북한은 25위다. 조별리그 같은 조에서 맞붙는 스웨덴(5위), 스위스(6위), 일본(9위)전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냉정하게 보면 단일팀이 적게는 3골, 많게는 10골 차로 질 수도 있다. 우리가 1승 목표로 삼은 일본은 최근 평가전에서 체코와 독일을 꺾는 등 상승세다. 일본선수들은 발이 안보일 정도로 빠르고 악착같다. 단일팀을 쉽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북한선수들은 머리 감독의 지시에 잘 따르고, 한국선수에게 도움이 되는 하키를 해야한다. ‘몸빵(몸으로 부딪히라는 뜻)’도 주저하지 않아야한다.”
영화 ‘국가대표2’에서 탈북자 리지원을 연기했던 배우 수애. 황보영이 실제 모델이다. [중앙포토]

영화 ‘국가대표2’에서 탈북자 리지원을 연기했던 배우 수애. 황보영이 실제 모델이다. [중앙포토]

단일팀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교류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나.
“개인적으로는 평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평창올림픽이 끝나는) 다음달부터 분위기가 또 달라질지도 모른다.”
북한서 언제부터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나.
“열두살 때 처음 시작했다. 월급·트레이닝복·세수비누를 제공받았다. 북한에선 당 간부 자식들이 아이스하키를 한다는 소문도 돌던데 그렇지 않다. 장비를 다 제공받아 ‘없는집 아이들’도 할 수 있다.”
2003년 아시안게임 당시 태극기를 달고 북한과 맞대결을 벌였는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엔트리를 보니 친한 친구를 포함해 북한에서 함께 뛴 선수가 8명이나 있었다. 그 중 친한 친구의 생일이 2월3일이었다. 난 한국으로 넘어와 돈을 절약하면서 알뜰하게 지냈는데, 그 친구 생일선물로 핑크색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샀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4만원짜리 친구선물을 산 거다. 손목시계와 5만원짜리 금반지도 준비했다. 북한선수들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 단체로 악수할 때 제일 끝에 섰다. 그런데 북한 선수들이 내 앞까지만 악수를 하더니 날 외면하고 휙 지나갔다.”
영화 국가대표2의 한 장면. [중앙포토]

영화 국가대표2의 한 장면. [중앙포토]

영화 국가대표2의 실제모델인데.
“현실은 영화보다 몇 배는 더 살벌했다. 경기 전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북한선수가 날 보더니 ‘좋아하긴 이를텐데’라고 말했다. ‘내일 경기에서 난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한국 감독님은 북한선수들에게 보복당할까 우려해 날 엔트리에서 제외하려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나갔다오더니 윗선에서 ‘황보영 덕분에 남북대결이 큰 이슈인데 안 뛰게 하면 어떻게 하나. 설마 얼음판에서 죽기라도 하겠어? 그냥 내보내’라고 말했다고 하더라.”
북한 선수들과 맞대결했던 경기는 실제로 살벌했나.
“북한에서 함께 운동했던 언니가 눈을 딱 마주치더니 날 겨냥해 강력한 슬랩샷을 때렸다. 기다시피 벤치로 돌아가 5분 동안 눈물콧물 쏟으면서 대성통곡했다. 북한선수들은 돌아가며 내게 보디체크를 하고 2분간 퇴장당했다. 빙판에 돌아오면 다시 보디체크를 했다. 경기에서 0-10으로 패했는데 감독님이 ‘살아돌아와 고맙다’며 나를 안아주셨다.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속옷은 결국 내가 입었다.”

고양=박린·김원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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