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외유 출장' 파문 … KBS 어수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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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열흘간 KBS는 초긴장 상태였다. 한 대학 교수가 폭로한 'PD 외유 출장'파문(본지 8월 27일자 7면)은 예상보다 컸다. "공영방송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이 정도일 줄이야…." 국민적 공분이 터져 나왔고, PD 해임.대국민 사과.윤리강령 발표 등의 강경 조치가 뒤따랐다.

이를 계기로 개혁 태풍도 닥칠 조짐이다. 정연주 KBS 사장은 "내부 비리에 칼을 들이대겠다"고 공언했다. 현 정부 들어 '뉴스 메이커'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KBS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선 것이다.

◆"썩은 사과 용서 않겠다"=절묘한 시점이었다. KBS는 지난 7월 국회에 제출한 결산안이 방만한 운영을 이유로 부결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올 국정감사는 당장 눈 앞이다. 여기에 조선.동아일보의 친일 사례를 집중 공격하는 등 일부 언론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시점에서 국민이 낸 수신료로 가족 관광을 일삼았다는, 스스로의 도덕성을 무너뜨리는 악재가 터진 것이다. 지난달 인사위원회에서 이견 없이 PD 해임을 결의한 것도 적당히 넘어갈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연주 사장의 충격과 분노가 컸다는 후문이다. 정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KBS의 공영성과 도덕성을 높여 국민 신뢰를 얻은 뒤 수신료를 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정사장은 지난 1일 임직원들에게 "앞으로 물을 흐리는 썩은 사과나 미꾸라지는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 말에 그의 심경이 녹아 있는 듯하다.

◆극한 처방도 등장=지난 4개월간 준비해 왔던 윤리강령이 때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했다. 윤리강령은 3만원 이상의 접대.향응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일체의 골프 접대도 못받도록 하고 있다.

또 TV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정치관련 취재와 제작 담당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뒤 6개월 이내에 정치활동을 하는 것을 막고 있다. 워낙 엄격한 직업윤리를 강조하고 있고 '강력한 단속'을 천명하고 있어 직원들간에 "수도승이 돼야 하나 보다"는 농담이 떠돌 정도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익명의 제보다. KBS가 3일 홈페이지에 '사이버 감사실'을 열고 비리 제보를 받기 시작한 것은 상당한 압력이 될 전망이다. 복마전 같은 방송.연예가에서 악용될 소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섣불리 '검은 돈'이나 거래를 밝히다가는 '낙마'하기 십상이다.

◆공영방송 임무 되새겨야="국민 여러분이 내는 수신료를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써야 하는 공영방송의 사명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KBS가 대국민 사과문에 적은 이 표현은 개인적 문제로 넘길 수도 있었던 사건이 왜 일파만파로 번졌는지에 대한 해답이다.

이와 관련, 네티즌들은 KBS의 방만함을 질타하면서도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엔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데 요즘의 KBS 개혁 프로그램들은 한쪽 방향만 바라보는 것 같다" "살아 있는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적 이익을 우선시해 달라"는 등 방송철학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이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는 KBS의 몫이지만.

지난 1일 이후 KBS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뼈를 깎는 아픔으로 다시 나겠습니다'는 글이 뜬다. 이 다짐대로 KBS는 추락한 위신을 회복할 수 있을까.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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